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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갑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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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사에서 문명의 형성기인 하 은 주 3대 가운데 하 은은 19세기
    갑골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전설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왕조들이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단지 2천8백60자만으로 6백년이 넘는 은나라의
    역사를 대충 기록해 놓았다.

    2천5백년전에 살았던 공자도 "논어"에서 은나라의 제도는 문헌부족
    때문에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런 사실들은 이미 당시에도 은나라에 대한 사료가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1899년 하남성 안양시 소둔촌에 위치한 은나라 후기 2백73년의
    도읍이던 "은 "에서 갑골문이 발견돼 은왕조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였음이 일단 확인됐다.

    갑골문은 은나라 후기에 왕이 제사를 지낼때 점복을 기록했던 문자다.

    거북의 등이나 배 (귀갑), 또는 소의 어깨뼈 (우골)에 그 문자를 새겼기
    때문에 "갑골문"이라고 이름지어졌다.

    글자의 꼴은 한자와 흡사하지만 갑골문은 중국의 고문자이지 중국
    최초의 문자는 아니다.

    그보다 훨씬 앞서 부호형 문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북껍데기를 불로 지지면 "복조"라는 파열형태가 나타나고 왕과 사관은
    이것의 모양을 근거로 길흉을 점쳤다.

    그리고 복조옆에 기원하는 내용을 새기고 이를 "복사"라고 했다.

    중국에서 지금까지 출토된 갑골문은 17만여점에 달한다.

    저명한 갑골학자인 곽말약 동작빈을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했지만 갑골문 4천5백자중 해독한 글자는 1천5백자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인민일보"에 따르면 강소성 서주교육대학의 반악교수가
    40여년의 노력끝에 나머지 3천자를 완전히 해독해 "삼천미석갑골문집해"를
    펴냈다고 한다.

    갑골연구 98년만의 쾌거다.

    중국상고사중 은대의 전모가 생생하게 밝혀질 날도 멀지않은것 같다.

    중국고대국가의 구조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사료가 거의 없는
    한국고대사연구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서울대박물관에도 일제때 수집한 갑골문이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아직 갑골학자는 한 사람도 없는 형편이니 외국의
    일이지만 부럽기만 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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