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모 < 청주대 강사 / 영화평론가 >

97년 새해 벽두에 몰아닥친 한파로 사회전체가 냉기류에 휩싸여 있다.

추위도 예전같지 않지만 여러가지 법개정문제로 시위와 파업등이 이어져
그 결과를 놓고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필자는 영화 관계자의 한사람으로서 "영화진흥법 개정문제가 이와 비슷한
경로를 걷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충무로는 다사다난했다.

괄목할만한 성과는 작품성이 높고 흥행에도 성공했던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감독)과 "은행나무침대"(강제규감독)다.

이 두 영화는 국내와 해외의 평가가 거의 일치한 보기 드문 작품으로
한국영화의 세계적 감각을 보여준 좋은 예였다.

해외의 반응으로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작품성을 인정받아 개별
작품중 최초로 베를린 국제영화제를 비롯 모두 14개의 국제영화제에 초청
받았다면 "은행나무 침대"는 해외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려 흥행에 성공했다.

가깝게는 홍콩에서 이미 개봉돼 헐리우드영화를 제치고 흥행에 성공해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더니 한달이 채 남지 않은 설에는 중국 본토
여러도시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이 쾌거는 역사적 배경을 알때 그 감회가 더욱 새로워진다.

4.19 이후인 60년대에 한국영화는 제1차 르네상스기를 맞았다.

69년에는 2백29편이라는 많은 작품을 만들어냈으며 홍콩과 영화교류를
빈번히 했다.

그런데 72년 유신헌법이 등장하면서 그에 따른 영화법개정과 정부주도의
업계 편에 의해 한국영화는 18년간 암흑기를 보냈다.

결국 1차 르네상스는 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좌절됐다.

그 사이 홍콩영화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뤄 우리 시장을 잠식하고 이제는
영화관계자들도 그 수준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97년 현재 한국영화는 80년대 후반이후 꾸준히 자생력
을 길러 제2의 르네상스를 맞았다.

그러나 장래는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

96년 가을 정기국회에서 영화진흥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당간의 공방,
정부와 영화인들간의 논쟁이 정리되지않고 해를 넘겼기 때문이다.

양식있는 영화인들은 현재 나온 개정안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 핵심인 "한국 공연예술진흥협의회"안은 제2의 영화심의법으로 발전할 수
있어 힘겹게 얻어낸 헌법재판소의 영화사전심의제위헌판결이 무색해질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에는 영화행정을 보다 긴 시각으로 바라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헌재의 철퇴를 맞은 "공륜에 의한 사전심의"를 포함한 현행 영화진흥법도
겨우 95년 12월에 개정된 것이었다.

이번 법개정의 쟁점인 "영화등급심의기구"는 영화인이 주체적으로 관장하고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 내용이 건실한 방향으로 실행되는 데는 배급과 유통업개념을
법안에 도입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데는 극장에서 거두는 문예진흥기금을 영화진흥금고로
만들어 이중 일부를 전국 극장의 전산망 구축과 관객서비스를 위한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새로 영상산업에 뛰어드는 대기업의 의욕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오랜기간 한국영화를 지켜온 충무로의 터줏대감들도 경시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란 무시할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체계적
인 경영방법을 채택해 기업형태를 이룰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꽃피울 절호의 찬스이자 마지막 기회다.

이번 영화진흥법 개정의 결과가 21세기를 열어가는 전문영화인들에게
희망이 될지 좌절을 주는 걸림돌이 될지에 많은 사람의 관심이 모아져 있다.

그리고 이번만은 커다란 반전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