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이 현실로 다가왔다"

영국의 더타임스지는 최근 미국 보잉과 맥도널더글러스(MD)의 전격 합병
소식을 경제면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이런 제목을 뽑았다.

이번 합병소식이 대서양 저편 유럽의 에어버스에 청천벽력같은 충격을 준
것을 빗댄 기사였다.

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는 "당신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랄 정도로
앙숙지간.

라이벌이라지만 에어버스쪽이 열세인 판국에 보잉이 MD까지 끌어들였다.

보잉과 MD가 합병계약을 최종 마무리하고 있던 지난 13일에도 에어버스
이사회는 리스트럭처링에 대해 머리를 맞댔지만 이견만 확인하고 끝났었다.

이날 이사회에선 미국의 움직임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하지만 불과 사흘후에 보잉.MD 연합군의 탄생 소식을 접하게 될 줄은 전혀
짐작 못했다고 한다.

에어버스로선 무참히 의표를 찔린 셈.

더타임스는 "충격은 경악을 넘어 공포분위기가 느껴질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제 에어버스로선 어떤 형태로든 반격작전에 나서지 않을수 없다.

만약 에어버스가 이번 보잉의 대공세에 슬기롭게 대처할 경우 위기경영의
새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번에도 "유럽은 언제나 각양각색이어서 되는게 없다"는 전철을 답습할지,
아니면 새로운 역사를 이뤄낼지 관심거리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정치적인 결단과 함께 체질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데 있다.

에어버스의 당면과제는 우선 컨소시엄 형태의 느슨한 경영체제를 단일화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일자리 보장을 경영의 최우선과제로 삼고있는 체질을 이윤극대화
형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두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에어버스 컨소시엄의 주체인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등 네나라가 합의를 봐야 한다.

에어버스의 영국측 파트너인 브리티시 에어스페이스 PLC와 독일의 다임러
벤츠 에어로스페이스(DASA)는 에어버스의 리스트럭처링에 적극적이다.

스페인도 큰 흐름엔 별 이견이 없다.

문제는 프랑스다.

프랑스의 아에로스파시알은 주인없는 국영기업이다.

체질적으로 구조조정을 두려워한 나머지 사사건건 영국과 독일의 발목을
잡아왔다.

실업률이 12%에 달하는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로서도 정치적인 결단 없이는
에어버스의 대수술에 동의할수 없는 입장이었다.

프랑스의 한 신문이 "보잉, 시라크(프랑스대통령)에 전기충격을 가하다"라는
논평을 실은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그런 프랑스로서도 이젠 더이상 버티기엔 역부족이라는 상황을 인식한
듯하다.

에어버스 고위관계자들은 "마침내 프랑스 정부가 내년초에 리스트럭처링에
착수할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한다.

프랑스정부는 에어버스의 프랑스측 파트너인 아에로스파시알의 민영화와
증시상장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도 그동안 미적거려온 에어버스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곧
허락할 것이 확실하다.

에어버스는 보잉의 차세대 항공기 개발에 대응하기 위해 1백억 달러의
개발기금을 요구하고 있다.

이 자금이 확보돼야 보잉의 747 후속기종과 경쟁할수 있는 5백50~6백석
규모의 에어버스 신기종이 하늘을 날수 있다.

컨소시엄 형태로 운영돼온 경영체제를 오는 99년에 합작법인으로 바꾸기로
한 일정도 앞당겨질 것이 틀림없다.

영국과 독일은 에어버스에 추가일감을 주기로 했다.

프랑스는 아직도 자체 일감 확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어 컨소시엄의 공동
보조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위기감을 먼저 감지한 영국과 독일은 이미 중복되는 지원부서를 감축하는
등 에어버스를 단일법인으로 만들기 위한 정지작업에도 착수했다.

이에 대해서도 프랑스는 실업률을 의식한 나머지 미온적이다.

에어버스에도 희소식은 있다.

보잉의 시장독식 가능성에 배알이 뒤틀린 중국 등 대미관계가 신통찮은
나라들이 에어버스의 응원군이다.

에어버스측은 보잉과 MD의 합병전에도 미국의 독주를 견제해온 중국 등이
앞으로 에어버스에 대한 동정(?)발주를 더욱 늘릴 것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보잉의 대공세로 유럽의 군소메이커들이 위기감을 절감하게 된 것도
에어버스로선 낭보다.

그동안 특화전략만 장기로 알고 몸집키우기를 게을리해왔던 군소기메이커들
이 보잉쇼크로 에어버스아래 집결할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당장 프랑스는 에어버스의 파트너인 아에로스파시알의 군수부문과 군용기
제작사인 다소를 합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계전문가들은 결국 보잉의 대공세에 자극받은 유럽항공기메이커들이
민항기분야와 군용기분야 등 2개로 총집결하는 형태로 전열을 가다듬을
것으로 보고있다.

이럴 경우 민항기는 당연히 에어버스로 일원화될 것이다.

군용기분야도 궁극적으론 에어버스형태의 신생 합작사로 집합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더하고있다.

이제 유럽 반격작전의 밑그림은 대충 그려진 셈이지만 성공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성패는 보잉의 공습에 초토화되기전에 실전 전력을 제때 재정비할수 있느냐
에 달려 있다.

< 이동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