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직칼럼] 멋지게 늙어가는 기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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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에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존경할만한 사람을 가리키는 "달존"이란
말이 나온다.
맹자는 그런 인물의 조건으로 관작과 연치와 덕을 꼽았다.
이에따라 과거 전통유교사회에서는 관작이 높거나, 나이가 많거나 덕을
지닌 사람을 "달존"이라고 불렀다.
물론 나이가 많은데다 덕도 있고 관작이 높은 사람은 저절로 최고의
"달존"이 되어 만인의 존경을 받았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달존"으로 높여 대우한 것은 조선왕조가 으뜸이
아니었나 싶다.
"장유의 차서"는 오륜의 하나로 강조돼 나이가 자기의 배가 되면
어버이처럼, 열살이 위면 어깨를 나란히해 걷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서
걸었다.
임금도 어려운 일을 당하면 먼저 나이 많은 조정의 원로에게 지혜를
구했고 인사에서도 연공서열이 중시됐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짧았던 옛날에는 70세가 넘어서까지 현직에서 일한
조정관리가 흔치는 않았다.
또 70세가 가까워지면 물러나기를 자청해 쉬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 있었다.
"여러 기러기가 모인다고 하여 강호가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니요, 쌍오리가
난다고 하여 주저가 더 작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소쇄하게 산수 가운데 그윽한 집을 짓고 한 바퀴의 달과 한 떼의 바람으로
기쁘게 천지 사이에 벗을 삼으렵니다"
69세의 영중추부사 김수온이 벼슬을 내놓고 성종에게 그만두기를 청한
"걸해천"을 보면 당시 선비들의 당당하고 넉넉했던 정신적 여유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조선조정에서 "70세 정년론"이 공식적으로 처음 논의된 것은 세종23년
(1440)이었다.
조사는 70세를 정년으로 하되 사직을 자청하기를 기다려 해직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국가에서 무조건 해직하는 것은 "노인을 우대하고 공로를 권장하는 뜻"에
어긋나므로 사직을 자청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로부터 3년뒤에는 70세가 되면 무조건 명예직인 산직에 편입시키자는
강경론까지 제시됐으나 논란이 일어 실현되지 못하고 문종때에 와서야
70세가 돼 사직을 자청하는 자에게만 자급을 올려 퇴직시키는 방법을 택해
시행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명예퇴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명망이 높고 정력이 쇠하지 않아 일을 맡길만한 사람은 임금의
특명으로 70세가 넘어도 그대로 현직에 머물렀다.
예를들어 세종때의 명재상 황희는 14세에 출사, 재상만 24년을 지내다가
86세에 은퇴해 90세에 세상을 떠났다.
또 성종때의 정창손은 30년의 공직생활 가운데 11년을 영의정직에 있다가
84세에 은퇴한뒤, 86년에 죽었다.
"달존"에게는 정년이 따로 없었던 셈이다.
인류역사를 보면 원시사회에서는 노인들을 잔인하게 대했다.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머리가 백발이 되면 죽여버렸다.
남태평양제도의 어떤 부족은 노인이 되면 야자나무 위로 올려 보낸뒤
밑에서 흔들어 떨어지지 않으면 더 살도록 하고 떨어지면 처형했다.
육체적인 힘이 세대사이의 관계를 규정했다.
그러나 문명이 조금 발달하면 노인들은 죽음을 당하지는 않아도 혹독한
대우를 받는다.
몽테뉴의 "수상록"에는 다음과 같은 섬뜩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아들이 늙은 아버지의 머리채를 잡고 문밖으로 끌어내는 순간 노인이
이렇게 외쳐댄다.
"그만둬 이놈아, 나는 내 아버지를 여기까지 끌어내지는 않았어, 이놈아"
서구문명이 유입되기 전까지는 오랜 문명의 전통을 지닌 중국이나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노인들이 지배력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정중하고 예의바른 대접을 받았다.
오랜 세월 변화가 없는 세계에서는 경험처럼 가치있는 자산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4천년이상을 유지된 사회를 알게된 몰테르도 일찌기 중국의 법률과
행정조직을 세계 최선의 것이라고 극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중국이나 한국에서도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이나 배려는 시들어져 가고
있다.
노인의 특권인 안정과 전통은 도외시되고 승리는 빠른 변화에 대처해가는
젊은이들에게만 돌아간다.
아마 이것은 세기말의 징후인지도 모른다.
더 심각한 것은 노인의 경계선이 한창 일할 나이인 50세전후로 뚜렷하게
그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50에 이르면 자기 앞에 그늘의 경계선이 보이고 오싹하는 기분으로
그 경계선을 지나고 나면 젊음의 매혹적인 영역이 끝난 것으로 믿게 된다"는
영국작가 조셉 콘래드의 "인생추분론"이 딱 들어맞는 말이 돼가고 있다.
금년은 "명예퇴직"으로 불리는 조기퇴직 바람이 샐러리맨 사회를 뿌리째
뒤흔든 한해였다.
앞으로 정리해고제가 도입되고 그것이 대권후보간의 세대교체론과
맞물리면 내년에 불어닥칠 조기퇴직 파장은 더 심각할 것이 예상된다.
이미 조기퇴직을 했거나 그 대상이 되어 어느 해보다 추운 세밑을 맞고
있을 사람들에게 20세기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지성중의 한 사람인 앙드레
모르와가 "멋지게 늙어가는 기술"에서 권하고 있는 두가지 방법을 전하고
싶다.
첫번째 길은 활기차고 적극적인 삶을 통해 정신적으로 늙지 않는 것이다.
파우스트가 최후에 눈이 먼 채 괴어있는 호주의 물을 빼고 이곳을
목장으로 바꾸는 일을 성취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두번째 길은 젊은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초연하며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득한 과거와 미래에 비추어 보면 현재란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속에서 나와 공존하는 주위의 모든 사람처럼 소중한
것도 없다.
항상 젊은이들과의 갈등속에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할때 삶의
활력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위존"이 존경받았던 까닭도 그런데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5일자).
말이 나온다.
맹자는 그런 인물의 조건으로 관작과 연치와 덕을 꼽았다.
이에따라 과거 전통유교사회에서는 관작이 높거나, 나이가 많거나 덕을
지닌 사람을 "달존"이라고 불렀다.
물론 나이가 많은데다 덕도 있고 관작이 높은 사람은 저절로 최고의
"달존"이 되어 만인의 존경을 받았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달존"으로 높여 대우한 것은 조선왕조가 으뜸이
아니었나 싶다.
"장유의 차서"는 오륜의 하나로 강조돼 나이가 자기의 배가 되면
어버이처럼, 열살이 위면 어깨를 나란히해 걷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서
걸었다.
임금도 어려운 일을 당하면 먼저 나이 많은 조정의 원로에게 지혜를
구했고 인사에서도 연공서열이 중시됐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짧았던 옛날에는 70세가 넘어서까지 현직에서 일한
조정관리가 흔치는 않았다.
또 70세가 가까워지면 물러나기를 자청해 쉬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 있었다.
"여러 기러기가 모인다고 하여 강호가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니요, 쌍오리가
난다고 하여 주저가 더 작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소쇄하게 산수 가운데 그윽한 집을 짓고 한 바퀴의 달과 한 떼의 바람으로
기쁘게 천지 사이에 벗을 삼으렵니다"
69세의 영중추부사 김수온이 벼슬을 내놓고 성종에게 그만두기를 청한
"걸해천"을 보면 당시 선비들의 당당하고 넉넉했던 정신적 여유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조선조정에서 "70세 정년론"이 공식적으로 처음 논의된 것은 세종23년
(1440)이었다.
조사는 70세를 정년으로 하되 사직을 자청하기를 기다려 해직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국가에서 무조건 해직하는 것은 "노인을 우대하고 공로를 권장하는 뜻"에
어긋나므로 사직을 자청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로부터 3년뒤에는 70세가 되면 무조건 명예직인 산직에 편입시키자는
강경론까지 제시됐으나 논란이 일어 실현되지 못하고 문종때에 와서야
70세가 돼 사직을 자청하는 자에게만 자급을 올려 퇴직시키는 방법을 택해
시행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명예퇴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명망이 높고 정력이 쇠하지 않아 일을 맡길만한 사람은 임금의
특명으로 70세가 넘어도 그대로 현직에 머물렀다.
예를들어 세종때의 명재상 황희는 14세에 출사, 재상만 24년을 지내다가
86세에 은퇴해 90세에 세상을 떠났다.
또 성종때의 정창손은 30년의 공직생활 가운데 11년을 영의정직에 있다가
84세에 은퇴한뒤, 86년에 죽었다.
"달존"에게는 정년이 따로 없었던 셈이다.
인류역사를 보면 원시사회에서는 노인들을 잔인하게 대했다.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머리가 백발이 되면 죽여버렸다.
남태평양제도의 어떤 부족은 노인이 되면 야자나무 위로 올려 보낸뒤
밑에서 흔들어 떨어지지 않으면 더 살도록 하고 떨어지면 처형했다.
육체적인 힘이 세대사이의 관계를 규정했다.
그러나 문명이 조금 발달하면 노인들은 죽음을 당하지는 않아도 혹독한
대우를 받는다.
몽테뉴의 "수상록"에는 다음과 같은 섬뜩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아들이 늙은 아버지의 머리채를 잡고 문밖으로 끌어내는 순간 노인이
이렇게 외쳐댄다.
"그만둬 이놈아, 나는 내 아버지를 여기까지 끌어내지는 않았어, 이놈아"
서구문명이 유입되기 전까지는 오랜 문명의 전통을 지닌 중국이나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노인들이 지배력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정중하고 예의바른 대접을 받았다.
오랜 세월 변화가 없는 세계에서는 경험처럼 가치있는 자산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4천년이상을 유지된 사회를 알게된 몰테르도 일찌기 중국의 법률과
행정조직을 세계 최선의 것이라고 극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중국이나 한국에서도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이나 배려는 시들어져 가고
있다.
노인의 특권인 안정과 전통은 도외시되고 승리는 빠른 변화에 대처해가는
젊은이들에게만 돌아간다.
아마 이것은 세기말의 징후인지도 모른다.
더 심각한 것은 노인의 경계선이 한창 일할 나이인 50세전후로 뚜렷하게
그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50에 이르면 자기 앞에 그늘의 경계선이 보이고 오싹하는 기분으로
그 경계선을 지나고 나면 젊음의 매혹적인 영역이 끝난 것으로 믿게 된다"는
영국작가 조셉 콘래드의 "인생추분론"이 딱 들어맞는 말이 돼가고 있다.
금년은 "명예퇴직"으로 불리는 조기퇴직 바람이 샐러리맨 사회를 뿌리째
뒤흔든 한해였다.
앞으로 정리해고제가 도입되고 그것이 대권후보간의 세대교체론과
맞물리면 내년에 불어닥칠 조기퇴직 파장은 더 심각할 것이 예상된다.
이미 조기퇴직을 했거나 그 대상이 되어 어느 해보다 추운 세밑을 맞고
있을 사람들에게 20세기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지성중의 한 사람인 앙드레
모르와가 "멋지게 늙어가는 기술"에서 권하고 있는 두가지 방법을 전하고
싶다.
첫번째 길은 활기차고 적극적인 삶을 통해 정신적으로 늙지 않는 것이다.
파우스트가 최후에 눈이 먼 채 괴어있는 호주의 물을 빼고 이곳을
목장으로 바꾸는 일을 성취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두번째 길은 젊은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초연하며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득한 과거와 미래에 비추어 보면 현재란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속에서 나와 공존하는 주위의 모든 사람처럼 소중한
것도 없다.
항상 젊은이들과의 갈등속에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할때 삶의
활력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위존"이 존경받았던 까닭도 그런데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