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만 하더라도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인 딜러를 찾아보기가 매우
어려웠다.

지금은 홍콩에만 150여명의 한국인 딜러들이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해외에 유학하여 MBA학위를 취득한후 세계적인 금융기관에
취업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기업이나 은행의 해외차입을 주선하고 외환거래와 채권거래를
중개하는 이들이 왜 우리나라가 아닌 홍콩에서 일하고 있을까.

홍콩은 국제금융센터인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해 국제금융 중개업무가
활발하게 이루어질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이나 은행들이 외화자금을 조달하거나 해외금융시장에 투자
하고자 할때 홍콩으로 가거나 홍콩에 있는 금융기관을 통하는 경우도 같은
이유에서다.

국제금융센터는 세계적 금융기관들의 지점 또는 현지법인이 설치되어 외환
채권 주식 등 국제금융상품의 거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를 말한다.

형성배경에 따라 전통적 국제금융센터와 역외금융센터로 구분되고 있다.

전통적 국제금융센터는 영국 미국 일본 등과 같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전통적 국제금융센터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나라 돈이 국제적으로
통용될수 있어야 한다.

뿐만아니라 국내금융시장및 외환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어 다양한 투자기회를
제공하고 외국자본이 자유로이 드나들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정보통신 교통 첨단빌딩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하며
전문인력도 풍부해야 한다.

한편 70년대 이후 나타난 역외금융센터는 홍콩 싱가포르 바레인 등과 같이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들이 고용기회를 늘리고 금융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들 역외 금융센터는 국제금융거래에 대한 세금 감면과 금융규제 완화 등
각종 특혜를 제공하여 외국금융기관을 유치하고 이들로 하여금 주변에 있는
다른 나라들의 국제금융거래를 주선토록 한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국가들의 국제금융거래를
위한 창구역할을 하고 있으며 홍콩은 중국 대만 한국 등 동북아시아 경제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홍콩이 중국에 귀속되더라도 국제금융센터로서의 지위는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따라 위축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에 대비하여 중국은 2010년까지 상하이를 국제금융센터로 조성할 계획을
발표했고 대만도 타이베이를 국제금융센터로 육성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태국도 이에 가세하였고 싱가포르는 아시아지역 국제금융거래
를 독식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을 국제금융센터로 발전시킬 필요는 없을까.

서울이 국제금융의 중심지가 된다면 굳이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가지 않고
서도 외화자금을 끌어다 쓸수 있고 여유자금을 투자할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이나 개인들까지도 손쉽게 국제금융시장을 이용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금융산업은 물론 법률 회계 정보 등 관련서비스업이 발달하므로 고급인력에
대한 고용기회가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

또한 실물경제는 물론 금융거래에서 우리나라가 아시아 지역내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도 국제금융센터는 필요하다.

물론 서울이 국제금융센터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비거주자간의 금융중개업무에 중점을 두는 역외금융센터를 설립하는 것은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후발참여자로서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대한 상대적인 강점을 찾기가 어렵고
외국어 실력을 갖춘 국제금융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큰 약점이
된다.

그렇다고 조세 감면이나 금융규제 완화 등의 특혜를 부여한다 하더라도
외국금융기관들이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설치된 영업망을 쉽사리 서울로
옮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력에 바탕을 둔 전통적 국제금융센터로의 성장가능성
은 높다.

우리나라의 국민총생산과 무역규모는 세계 10위권이며 몇년안에 엔화의
국제화가 본격적으로 진전되었던 일본의 80년대 수준에 도달할 전망이다.

OECD 가입과 WTO 금융협정 발효에 따라 금융시장 개방폭이 더욱 확대되고
개방속도 역시 빨라질 것이다.

이에 따라 2000년대에 들어서면 외환-자본거래의 자유화와 원화국제화가
상당히 진전되어 채권및 주식 등을 대상으로하는 원화표시 국제금융거래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서울이 전통적 국제금융센터로 성장하기 위한 선결요건이 충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지금은 21세기를 내다보면서 서울을 국제금융센터로 육성하기 위한
기반을 착실히 다져가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 우선 환율변동과 자본이동이 자유로운 외환체제가 확립돼야 한다.

원화국제화도 더욱 진전되어야 한다.

그리고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정비하고 거래방식과 지급
결제제도를 선진국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도시교통 여건이나 정보통신 설비와 같은 사회간접시설도 보완해야 하며
국제금융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금융기관과 대학이 공동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내금융기관들도 경영합리화와 인력전문화를 통하여 외국금융기관과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는 등 "서울국제금융센터"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그 날을
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