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화 한가지를 베어 서찰에 동봉함으로써 겨름없이 서로의 실력을
가늠했던 옛 무인들의 넉넉함이라.

검의 길은 선의 길이요 곧 도의 길이니 검을 잡고 호흡을 고르면 마음은
호수와 같이 고요해지고, 일도양단의 기세로 검을 휘두르면 가슴은 용광로
같이 끓어오른다.

모든 잡다한 유혹과 미련을 한칼에 끊어버리고..."

내가 불혹의 나이에 "해동검도"에 입문한 것은 우연히 접한 화두같은
이말의 의미가 궁금해서이다.

기체조와 역근으로 몸을 풀고 "쌍수검법" "심상검법" "예도검법" "본국검법"
이란 춤사위같은 검형을 연마하다 보면 어는 순간 검시일체, 무아의 경지에서
자신을 잊어버린다.

진검이 주는 푸르고 예리한 공포감이 어느덧 친밀감이 된 지금 해동검도의
수련에서 기의 존재를 느끼게 되고, 하루라도 검을 휘두르지 않고는 베길수
없는 무인이 되었다.

해동검도의 수련에 이처럼 빠져든 이유는 이 무술이 주는 화려하고 다양한
검법 뿐만아니라 나의 수련장인 "해동검도 연무수심관"(방학동 소재)의
"검우회"란 무술인 모임이 주는 신선함과 친밀감도 한몫을 하였다.

직업이 달라도 해동검도의 묘미에 빠져 친해진 "검우회" 회원들, 불혹의
나이에도 해동검도 수련을 도를 닦는 수행자의 자세로 임하는 우리 검우회는
삭막하고 피곤한 도시생활에서 신선한 활력을 주고 있다.

한달에 한두번 우리 검우회 회원들은 긴칼 옆에 차고 명산대천을 찾아
산중수련을 떠난다.

신라시대 화랑이 된 것같은 산중수련의 묘미는 말로 형언하기 힘들다.

명산의 기가 살아 숨쉬는 곳에서 추워지는 검무, 나와 자연이 따로 없고,
나와 검이 따로 없다.

나에게 이젠 검의 길이요 선이요 도가 딘지 오래다.

젊은 시절, 도시생활에서 일취해천수(한번 취해서 온갖 근심을 몰아낸다)
하였지만 이제 나는 해동검도를 통해 일휘해천수(한번 휘둘러 온갖 근심을
몰아낸다) 하고 있다.

"해동검도 연무수심관 검우회!"

이 모임을 통해 나는 해당화 한가지를 베어 서찰에 동봉함으로써 겨룸없이
서로의 실력을 가늠했던 옛 무인들의 넉넉함과 여유를 배우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