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엔 이른바 "유통자금"이란게 있다.

정유사가 계열주유소에 빌려 주는 장기저리자금이다.

외상매출금 대여금등 명목으로 적게는 5,00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억원
까지 "대주는" 돈이다.

정유사들이 치열한 주유소 확보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 유통자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경영을 악화시키고 있다.

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국내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깔아놓은
유통자금은 모두 5조6,635억원.

지난 94년에 비해 1조1,150억원, 24.5%가 늘어난 액수다.

신규주유소를 유치하기 위해, 또 다른 정유사로 옮기는 것을 막으려고
뿌리는 돈들이다.

정유업계의 이같은 유통부문에 대한 과다한 지출은 신규투자재원의 부족을
초래해 고도화시설에 대한 투자를 지연시키고 유가인상요인으로 작용하는
등 산업구조를 왜곡시키는 주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각각 97년과 99년으로 예정된 석유사업 자유화와 개방화를 앞두고
경쟁력제고의 걸림돌이 될게 분명하다.

물론 이런 돈을 뿌린 1차적 책임은 정유사에 있다.

자사 계열 주유소숫자를 늘리기 위해 "자금전"을 펼친 것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정유사들이 올 중순부터 주유소에 대한 과도한 지원을 자제하고 주유소
확보와 지원방식을 기술과 마케팅지원 등 정공법으로 바꾼 것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정유가 최근 만든 "오일뱅크 경영지도진단팀"이 그런 것이다.

새로운 주유소의 창업과 고객응대방법등을 교육하고 부실주유소의 경영을
컨설팅해 준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유통자금이 정유사로 다시 들어오는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5조원이 넘는 돈이 묶여 있는 정유업계의 경영이 정상화
된다는건 구조적으로 무리라고 지적한다.

유통부문의 합리화에 대한 정부와 업계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