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사장.

그를 한국 최초의 "테크노크라트"로 부르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경제부총리를 지냈다는 화려한 경력때문만은 아니다.

"자유당말기에서 5.16쿠테타초기까지"의 불확실한 상황에서 재무부
예산국장사무차관으로 재직하면서 한국형 테크노크라트의 모델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도 해서다.

그의 후배 테크노크라트들은 개발경제시대의 주역으로 성장을 이끌어
냈다.

대학총장 부총리 국제민간경제협의회(IPECK)회장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
협의회공동대표 숙명학원이사장등 다양한 경륜의 소유자.

그는 이제 남은 불꽃을 남북공동시장구축등 "통일"을 위해 태울
생각이라고 말한다.

도봉산이 멀리 보이는 홍릉 KIST이사장실에서 그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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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최필규 국제1부장 ]

-올해 고희(70세)를 맞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이보다 훨씬 좋아보이시는데요.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이이사장 =매일 아침 30분씩 산책합니다.

오후엔 헬스클럽에도 나가고요.

주 1회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에서 강의하는 것외에는 특별히 매달리는
일은 없습니다.

KIST이사장실에는 매주 월요일에만 출근합니다.

-이사장님께서는 평소 경제 외교 교육 사회운동등 거의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셨지요.

관심분야마다 일가견을 이루신것은 물론이고요.

요즘에는 어느쪽에 관심을 두고 계십니까.

<>이이사장 =학교에서 공공정책론을 가르치기 때문인지 특정 분야보다는
국제정세 변화와 한반도문제등 광범위한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통일"은 그 중심에 있지요.

이런 문제를 가지고 학생들과 토론하다 보면 제 자신도 마음가짐을 다시
가지게 됩니다.

(이이사장은 주 1회 경희대에 나가는것 외에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등에 가끔씩 특강을 나간다)

-한국의 대표적인 미래학자로서 좌우명도 "30년 앞을 내다보고 살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이사장 =68년 서울대 행정대학원장시절 한국 미래학회를 창설했지요.

그때에는 "30년 뒤"인 21세기 얘기를 하자는 것이었는데 벌써 눈앞에
왔네요.

한국의 미래는 그동안 주로 밝은 쪽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장미빛 "낙관"만은 아니라 명암이 엇갈리는 양상으로
보인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는 셈이지요.

우선 세계는 공산국붕괴 독일통일등 냉전이 종식되었는데 한반도만 냉전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들수 있습니다.

국제정세가 다른 나라들에는 유리하게 작용하는데 우리에게만은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는 없었던 것이지요.

21세기가 유독 우리 민족에게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입니다.

국내요인을 살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사회가 너무 빨리 노령화되고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정보화 세계화
되고 있어요.

과거 30-40년동안은 젊은 인구들이 노동력과 창의력을 제공했던
시기였는데 이런 시기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국내외적 요인들이 21세기 한국사회의 전진을 뒤에서 잡고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고비"들을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는지요.

<>이이사장 =전국민을 새로운 국제정세와 정보화시대에 맞게 교육
훈련시켜야 합니다.

재교육은 물론 언어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서비스업이 중심이 되는 시대에서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고는
국제경쟁에서 이기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금융 관광 법률 교육은 물론 컴퓨터와 관련된 새로운 서비스업에서
벌이를 하려면 영어는 더욱 필요할 것입니다.

세계경제의 중심점이 될 것이라는 APEC(아.태경제협력체)지역만해도
이제 주종 산업은 서비스업이지요.

정부나 주요 정당들도 이제 영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막연히 깨닫는데
그치지말고 영어교육을 체계적으로 제도화하는게 필요합니다.

대부분이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우면서 자라는 동남아국가들에 비해서도
매우 늦었어요.

-요즘 인터넷이다,PC통신이다하여 젊은 사람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마치 공상과학소설같은 미래가 현실로 다가올것 같습니다.

<>이이사장 =공상소설처럼 되는게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적응할수 있고 효과적으로 이용할수 있는 미래를
만드는게 중요합니다.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하면 과학기술도 행복을 가져다 줄수 있을
것입니다.

미래사회라 할지라도 바른 인성과 사회의 안녕을 유지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변화가 너무 빠른 것도 사회를 짜증나게 만듭니다.

대안이 있을 법도 한데요.

교육으로 풀어나갈 방법은 없는지요.

<>이이사장 =경제성장률이 점차 둔화되고 성숙한 사회가 되면 좀
나아질 것입니다.

고성장이 당연시되는 시대는 빨리 지나가야지요.

그러나 미래는 거저 오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도 질서의식을 가르치는등 "교육"을 해야지요.

아마 20-30년은 걸릴 것입니다.

학교보다 가정 매스컴 종교단체등이 더 중요합니다.

-관계 학계등 다양한 곳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모든 일에서 다 보람을 찾으시겠지만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이이사장 =가장 기억에 남는 때는 지난 58년부터 61년까지입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승만자유당정권 허정내각수반시절 민주당정권
5.16군사정권초기등 4개 정권에서 "재무부 예산국장"자리를 했던
때입니다.

혁명을 두번(4.19,5.16)거치면서 같은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재물을 탐하지 않고 정권에 아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런 점에서 바로 최초의 테크노크라트라는 평가도 받을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군사정권시절 잠시 재무부 사무차관직을 맡았는데 이때 교육을 잘 받은
고시출신들을 대거 승진시켰습니다.

지금 강원도지사인 최각규씨가 사무관에서 과장이 되는등 그때 수십명이
엘리트들의 승진했지요.

그들이 60-70년대의 경제개발을 이끌었습니다.

그게 공직생활중의 가장 큰 보람입니다.

대학에 있을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위스대사를 지내고 돌아와 서울대 행정대학원 숭실대 한남대 아주대에서
재직했는데 그때 "다음 세대에 도움이 되는 인재양성"을 위한 대학개혁에
애썼습니다.

내가 총장으로 있었던 대학들이 지금도 개혁이 잘된 대학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나름대로 보람을 느낍니다.

-이이사장님의 후배사랑과 인재양성노력을 보면 왜 아호가 덕산인지
알겠습니다.

(이이사장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50리쯤 떨어진 고향 덕산리의 이름을
따 아호를 지었다)

<>이이사장 =(웃음)

-요즘 경제가 좋지않습니다.

한승수부총리가 어려움이 많지요.

선배부총리로서 해주고 싶은 말도 있을 텐데요.

<>이이사장 =제가 부총리로 있을때(79년 12월~80년 5월)는 박정희대통령
시해직후였지요.

정치적 공백도 컸고 2차유류파동으로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땐 정책
수단들이 있었어요.

환율평가절하등의 정책을 사용할수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정부도 거시경제운영을 마음대로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때보다 훨씬 어려운 처지지요.

결국 이제는 정부가 경제활력을 유지하려면 규제를 완화하면서 외국인들의
투자를 유치하는 환경을 만드는데 전력할수 밖에 없어요.

우리 기업들이 나가는 것을 막지 못하면 그만큼 외부에서 들여오면
되는 법이지요.

임금 금리 지가등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가를 낮추기는 어렵다 해도 임금과 금리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생산성보다 2배이상 오르는 임금은 확실히 문제예요.

국제경쟁력이 회복될수 있도록 생산성향상범위안에서 임금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국민적 합의를 이뤄내야 합니다.

금리문제도 어렵긴 하지만 4,5년 걸린다고 생각하고 길게보면서
저축장려정책을 꾸준히 펴나가야 합니다.

-앞으로도 하고싶은 일들이 많으실 텐데요.

그중에서도 꼭 하고싶은 일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이이사장 =과거와 같은 커다란 포부는 많이 줄어들었지요.

그러나 꼭 하고싶고 지금도 최선을 다해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남북공동시장을 만드는 일입니다.

21세기는 거대시장의 시기입니다.

EU(유럽연합)는 가장 성공한 거대시장입니다.

아시아는 잠재력이 많은 거대시장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중국 일본
러시아등이 각각의 거대시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EU처럼 몇개 나라가 연대해 거대시장을 만드는 것과는 다르지요.

우리나라는 결국 이들과 연대해 거대시장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북이 하나의 공동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앞으로 제가 할일은 "남북공동시장"을 제창하거나 이를 구축하는데
에너지를 쏟는 것입니다.

지금 다른 사회활동에는 대부분 손을 끊고 있으나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