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 박영배특파원 ]

아이인 밸런스 영국텔레콤(BT)회장은 MCI 인수를 결정하고 난 직후
점잖게 목소리를 깔면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다가오는 글로벌 통신시대에는 4~5개의 거대 통신회사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우리회사임은 물론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거북한 말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현재 전개되는 상황으로 볼때 일단 "덩치가 커야 살아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 미국내 랭킹 2위의 장거리 전화회사인 MCI를 합병한다는
영국텔레콤의 발표는 뜻밖이었다.

두 회사는 원스톱서비스를 하는 콘서트회사를 워싱턴에 설립하는등
유대는 있었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결합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었다.

세계 통신업계는 영국텔레콤의 공세를 "공룡들끼리 한판 붙어 보자"는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등 선진국에는 덩치 큰 통신회사들이 많다.

그러나 미국 영국을 제외하고는 통신시장이 개방돼 있지 않다.

프랑스 독일등은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방일정에 따라 오는 98년
1월부터 시장을 활짝 열게 돼 있다.

이에따라 거대 통신회사들은 벌써부터 더 많은 파이를 확보하기 위해
암중모색이 활발하다.

AT&T는 거꾸로 영국시장을 넘보고 있으며 영국텔레콤은 독일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

독일텔레콤은 민영화의 첫발로 뉴욕증권시장에 상장, 장래를 대비한
자금조성에 나섰다.

<< 미회사들 춘추전국시대 >>

특히 미국의 통신시장은 일찍부터 개방돼 있었기 때문에 회사들의
움직임이 기민하다.

더욱이 올해는 60년이상 시행된 연방통신법의 독점금지조항이 해제됨에
따라 사실상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해 있는 셈이다.

이 법은 장거리와 지역으로 서비스영역을 분리, 회사들은 제한된 경쟁을
해 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법의 개정으로 사업영역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또 새 통신법은 케이블TV회사들도 모든 통신시장에 뛰어들수 있도록
길을 터 주고 있기도 하다.

이에따라 업체들은 연간 800억달러에 이르는 장거리전화시장과
1,000억달러가 넘는 지역전화시장을 놓고 한치 양보없는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미래의 통신시장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어 업체들간의
싸움은 "먹느냐, 먹히느냐"하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의 대부분 통신회사들은 장거리,지역,무선통신등 종합서비스사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AT&T는 무선통신사업에 100억달러를 투입했고 지역전화 네트워크를
신설하기 위해 올해 20억달러를 투자했다.

MCI와 스프린트사도 역시 무선통신사업과 지역전화사업을 위해 200억달러
씩을 쏟아 붓는다는 장기계획을 이미 세워 놓았다.

지역 전화회사인 벨 애틀랜틱, 퍼시픽 벨, 유에스 웨스트등 8개 지역전화
회사들도 대규모 투자를 전제로 나름대로 자구책 모색에 들어갔다.

<< 국경없는 합종연횡 >>

이들은 자구책으로 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린다든가, 군살빼기로 경영의
합리화를 꾀하는등의 방법을 쓰고 있다.

뉴저지의 벨 애틀랜틱과 뉴욕의 나이넥스는 주총에서 합병이 결정된
상태이며 지금은 셀룰러폰사업을 공동으로 전개하고 있다.

AT&T는 멕코사를 인수, 셀룰러폰사업에 들어갔다.

AT&T와 MCI는 경쟁사이면서 지역전화사업에 공동전선을 펴고 있기도
하다.

통신업체들의 몸집불리기는 국경을 넘나들며 적과 동지가 없는 합종연횡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AT&T는 스페인의 텔레포니카등 유럽 4개국의 통신업체들과 "유니소스"를
만들었다.

GTE는 엑셀커뮤니케이션스등 여러개의 인수 업체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 기업은 경영효율을 위해서라면 감원도 불사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전화 3사가 모두 대폭적인 감원을 단행했다.

AT&T는 전체 사원 30만명중 13%에 해당하는 4만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관리직사원은 거의 절반을 줄일 계획이다.

MCI도 수천명의 해고를 단행했고 스프린트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도 전화요금 인하경쟁은 한치 양보가 없다.

가격파괴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그저 원가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이다.

AT&T는 미국내에서는 거리에 관계없이 분당 15센트이며, 국제전화도
분당 34센트로 우리 요금의 절반도 안된다.

이에 뒤질세라 스프린트는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국내외 통화를
막론하고 금요일에는 무료라는 파격적인 서비스를 제공했었다.

지금도 국제전화는 금요일엔 무료이다.

원가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을 꺾는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세계통신시장엔 합작 제휴 매수등이 난무하면서 한바탕 회오리가
칠 전망이다.

황금알로 일컬어지는 통신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국의 통신업체들은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일 것이기 때문이다.

<< AT&T와 라이벌 >>

AT&T는 지난해 9월 3개 분야로 사업영역을 나누었다.

통신(AT&T)과 통신장비(루센트 테크놀로지), 컴퓨터(NCR)사업이 그것이다.

당시 알렌회장은 21세기를 대비하면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분할은 아직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AT&T는 현재 200개국에서 9,000만 가입자를 상대로 영업을 하고,
44개국에서 합작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밖에도 AT&T는 해저케이블과 통신위성등으로 지상 지하 공중을 연결하는
통신망을 구축,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업체로 평가되고 있다.

AT&T는 영국텔레콤이 미국에 진입하자 유럽의 스웨덴 네덜란드등
통신업체들과의 제휴를 서두르고 있으며, 유럽통신시장의 전면개방에 맞춰
이 지역을 공략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유럽업체들과 합작한 유니소스는 연간 매출이 10억달러에 이르고 있으며
직원수도 5,000명으로 불어났다.

통신종합서비스를 하는 월드파트너스도 수십개국의 통신회사들이 다투어
참여하고 있다.

한편 영국텔레콤의 MCI합병에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스프린트이다.

지금까지는 장거리전화부문에서 3위를 유지해 왔으나 앞으로는 그 힘이
크게 밀릴 것이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스프린트는 프랑스의 텔레콤과 독일의 텔레콤 주식을 20% 갖고 있으나
지금 상태에서 더 깊은 유대를 갖기는 어려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유럽시장이 개방될때 스프린트가 유럽회사들과의 연고권을 내세워
유럽공략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