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총수의 결정에 고개만 끄덕이는 꼭두각시"

하는일없이 직함만 달고 있는 기업내 "이사"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기업경영과 주주들간의 연결고리라는 본연의 역할은 망각한채 CEO(회장겸
최고책임자)의 눈치만 보고 있다는게 일부 기관투자가나 관리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사란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품만도 못한 존재"(밀레스 메이스 미
하버드대교수)라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최근 미재계에선 사뭇 달라진 모습이 눈에 띈다.

이사회 조직을 과감히 개편하거나 이사회 활동에 대해 자체평가에 나서는
이사들이 늘고 있다.

미 최대 연금펀드인 TIAA-CREF가 올해 1천5백여기업의 이사진을 대상으로
기업관리실태를 평가한 것이 이런 변화를 부추겼다.

미 언론과 공공단체들이 실속없는 이사회에 대해 비난여론을 조성한 것도
한몫했다.

그 결과 "주주들의 자산가치를 어떻게 극대화할수 있을까가 이사회의 주된
대화내용"(크라이슬러의 존 네프이사)이라는 회사들이 많아졌다.

이렇듯 활발한 이사들의 활동과 기업의 경영실적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미 경제주간지인 비즈니스위크 최신호는 <>이사진의 질 <>독립성 <>기업
관리실적등의 평가항목을 마련, 자체분석과 기관투자가및 관리전문가들에
대한 여론조사를 통해 항목별 득점을 집계하는 방법으로 미재계 "최고.최악
의 이사진 50"을 선정했다.

"최고의 이사진" 랭킹 1위는 V8야채주스를 생산하는 회사로 유명한
캠벨수프.

제너럴일렉트릭(GE)과 IBM이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고 컴팩컴퓨터
콜게이트파모리브 크라이슬러가 그뒤를 이었다.

캠벨수프의 이사들은 눈코뜰새가 없다.

특히 매년 적어도 한번은 CEO를 불참시킨 이사회를 열어야 한다.

이자리에서 CEO의 경영실적을 평가하는 것은 물론 회사의 연간 영업목표와
3개년 경영전략을 세밀히 검토한다.

또 매년 이사회에 대한 자체평가를 실시,결과를 공개한다.

크라이슬러의 경우 이사 개개인과 기업총수는 규칙적으로 주주들과 모임을
갖는다.

이사에 대한 연금혜택이 없을뿐 아니라 급여는 주식으로 지급된다.

이사들은 회사주식을 최소한 5천주이상 보유해야한다.

"최악의 이사진"으로는 식품업체인 아셔 다니엘스 미드랜드(ADM)사가 수위
에 올랐다.

챔피언인터내셔널(CI.2위) 헤인스(3위) 롤링스인바이런멘털(4위)
네이션스뱅크(5위) AT&T(6위) 순이다.

"최악"의 명단에 오른 이사들의 특징은 주주들의 이익은 뒷전으로 내몰고
사주의 이익에만 관심을 쏟는다는 것.고령인 드웨인 앤드리스회장(78)이
압권을 휘두르고 있는 ADM의 경우 이사진은 모두 연줄과 결탁으로 맺어졌다.

오너를 견제할만한 이사는 찾아볼수 없다.

독립성과 책임감이 없다는 것도 비효율적인 이사회의 공통점.

CI와 헤인스는 모두 이사진의 절반이상이 다른 회사의 CEO이거나 CEO출신
이다.

CI의 이사들중에는 회사주식을 10만달러어치도 갖고 있지 않은 비상근이사
가 8명이나 된다.

이번 조사결과로 볼때 최고의 이사진을 보유한 기업이 최대의 경영실적을
올린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사진이 형편없다고 해서 다 경영부진을 겪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경영실적이 좋은 회사라도 기업관리를 맡는 이사진이 튼튼
하지 않다면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경영위기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사진의 실태를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현명한 CEO는 예스맨보다는 따끔한 충고를 서슴지 않는 해박하고 건전한
이사를 원한다"(주얼사의 도널드 퍼킨스 전CEO)는 말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 김지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