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화랑가를 돌아보는데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소호 (SoHo)일 것이다.

남북으로는 그리니치 빌리지와 캐널가에 접해있고,동서로는 설리번가와
브로드웨이가 경계인 2.5 면적의 작은 거리인 소호는 196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중심이 되어왔다.

젊고 패기에 넘치는 작가들과 레오 카스텔리 페이스 월덴스테인 가고시언
폴라 쿠퍼 등 유능한 화상들과 화랑에 의해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미술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그런 소호거리가 이제는 비싼 임대료와 미술시장 불황 등 여러
요소들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다.

비싼 임대료를 지불할 능력이 부족한 군소화랑들과 아방가르드적 성향이
강한 일군의 작가들은 이스트빌리지로 이동했고, 전통을 자랑하는 폴라
쿠퍼 등의 화랑은 새롭게 등장한 첼시지구로 옮겨갔다.

이제 소호의 소명은 다한 것일까?

소호 화랑가의 창시자라고도 할 수 있는 레오 카스텔리화랑의 디렉터인
수잔 브룬디지의 말을 빌리면 그런 판단은 아직 시기상조이며, 소호의
명성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비록 소호에 레스토랑과 고급 부틱이 너무 많고, 초창기의
순수성이 많이 퇴색되었지만 건물의 구조상 화랑으로밖에 사용될 수 없는
고층의 탁트인 장소가 넉넉하고, 전처럼 왕성하지는 않지만 화랑을 찾는
관객들의 발길 또한 꾸준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탄탄한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점친다.

게다가 기존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탈피, 관람객들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시도하는 등 자체적인 노력이 돋보인다.

지난 5~8일 <소호 아트 페스티벌>에서는 <사이버 전시회>를 개최해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데 성공했고, 돌아오는 23일을 "뉴욕의 미술가
산책의 날"로 지정, 화가들이 기부한 작품들을 경매에 부쳐 그 이익금을
집없는 사람들을 위해 쓰기로 하는 등 뉴욕시와 사회의 고통에 동참하려는
시도도 관심을 모은다.

소호와는 대조적으로 이미 명성을 획득한 작가들에게 관심을 갖는
고급화랑들이 밀집해있는 57번가는 위기를 맞고 있는 소호에 비해 꾸준히
전시회를 개최, 안정감을 느끼게한다.

페이스, 메리 분 등의 유명화랑에서 로버트 라우젠버그 등 스타들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새롭게 화랑지구가 형성되고 있는 첼시지구는 싼 임대료로 넓은 장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잇점 때문에 소호의 몇몇 화랑들이 이미 자리를 옮겨
활발한 생기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부틱과 레스토랑으로 북적거리는 소호와 달리 한적한 창고형 건물들로
이루어진 거리에 요셉 보이스의 개념으로 디자인된 가로수와 돌들의
조화속에 친절한 안내와 층층마다 은은한 불빛을 발하는 댄 플레빈의
조명작품이 어우러진 디아 아트센터가 새로운 현대미술관으로서의 풍모를
자랑한다.

그외에 소호에서 얼마전 옮겨온 폴라 쿠퍼화랑과 매튜 마크화랑, 린다
컬크랜드 화랑 등이 새로운 화랑가로서의 첼시지구를 형성하고 있다.

< 가나미술문화연구소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