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신탁 증권 보험 은행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가 주식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주가가 폭락해도 속수무책으로 보유주식을 내다팔 수밖에 없는게 기관들의
속사정이다.

약 10조원의 신탁재산을 주식으로 운용하고 있는 투자신탁회사도 요즘
주식형 수익증권의 환매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고객의 환매요구에 응하고도 처분하지 못한 미매각 수익증권은 쌓이고
그에 따른 차입금 부담이 늘고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연중 최저치였던 지난 5일 현재 8개 투신사의 미매각수익
증권은 총 3조2,984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70%인 2조3,144억원이 주식형 미매각수익증권이다.

처분하지 못한 미매각 물량을 돈을 빌려가면서 투신사가 떠안고 있으니
이자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주식을 팔아야 하는 입장이다.

한국투신의 한 관계자는 "이자부담을 줄인다는 차원에서 가급적이면 환매를
받으면 즉시 처분하고 있다"며 "평가손이 5%이내인 미매각 물량은 무조건
처분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최대 매수세력으로 부각됐던 보험사도 요즘 사정이 여의치 않다.

약 3조원을 주식으로 운용하고 있는 삼성생명의 한 관계자는 "수급여건이
완화될 조짐이 있어야 매수에 들어갈 것"이라며 "평가이익이 난 일부 개별
종목에 대해서만 이익실현 차원에서 팔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보험사가 평가이익이 줄어들거나 평가손을 입고 있는 상태여서
매수세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엄청난 평가손을 입고 있는 은행도 주식투자를 줄이고 있다.

은행별로 1조원이상씩 주식투자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 30~40%의 평가손을
입고 있다.

제일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출등 영업활동에 따른 업무이익은 많이 나지만
주식평가손으로 까먹고 있는 실정"이라며 "은행의 공신력을 봐서라도 주식
투자비중을 줄여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연기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교원공제회 공무원연금 국민연금 사학연금 지방행정공제회 등 5대 연기금은
주식투자비중을 줄이고 있다.

공무원연금의 한 관계자는 "감독기관의 감사때면 항상 주식투자가 많다는
지적을 받는다"며 "연기금으로선 정책적인 보장이 되지 않는 한 주식투자를
늘릴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 최명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