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통합화폐인 "유러"는 강세를 보일 것인가, 약세에 머물 것인가.

유러가 미국 달러화를 밀어내고 전세계 기축통화의 역할을 해낼수 있을
것인가.

유러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부터 국제금융가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분주하다.

유러의 위력정도에 따라 각국의 외환보유 구성비가 바뀌고 무역거래에서
기준통화가 달라지는 등 국제 금융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것이 분명
하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전문가들은 유럽연합(EU)이 전세계 교역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때 달러로부터 기축통화의 자리를 물려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OECD에 따르면 화폐통합에 독일과 프랑스를 포함, 7개 회원국이 참여해도
전세계 총수출량중 이들이 27%를 점유, 15% 정도인 미국의 2배 수준에
근접하게 된다.

회원이 10개국으로 늘어나면 수출비중이 35%,15개 전회원국이 가담하면
43%에 이른다.

런던소재 줄리우스 바어 투자회사의 이드리엔 오웬스씨는 "무역거래에
필요한 유러의 자체 수요만해도 달러화 수요를 훨씬 넘어서게 된다"고
분석했다.

유러가 유통되면 달러화의 수요가 줄어드는 현실도 유러의 기측통화
가능론을 뒷받침 해준다.

실제로 화폐통합에 참여한 유럽 국가들은 예전처럼 달러를 대량 보유할
필요가 없다.

통합에 참여한 즉시 일정분의 유러를 중앙은행에 이전한후 초과보유 달러를
매각, 재정적자를 줄이는 등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것이라는게 JP모건의
애비니시 퍼소드 유럽통화연구소장의 주장이다.

달러의 매각가능량은 전문가들간 다소 차이가 있으나 화폐통합 회원국이
6~8개국일 경우 1,000억~2,000억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경우 달러가 국제금융시장에 매물로 흘러나와 그 가치를 5~10% 떨어뜨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달러수요의 감소는 유럽만의 현상은 아니다.

파리은행의 닉 파손 외환전문가는 "달러화의 위력이 점차 약해지면서
아시아국가들의 달러보유량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2%씩 줄고 있다.

유러가 등장하면 이 속도는 보다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미국의 프레드 버그스텐박사도 유러가 유통되면 달러는
즉시 기축통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러의 등장은 세계주요 통화간 세력판도에 대변혁을 주게되며
달러는 2군 그룹으로 밀려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따라서 경제 전문가들간에 유러는 강세통화가 될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강한 편이다.

달러화를 매각, 유러의 보유를 늘릴 경우 통화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
하다는 분석을 깔고 있다.

또한 정치적 이유에서도 유러의 강세유지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통합통화에 불신을 갖고 있는 국민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유럽정부들은
유러를 강한 통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다.

마르크화의 상실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자금의 해외도피로 이어지자
헬무트 콜 독일총리가 "마르크화처럼 강한 유러"를 거듭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런 분위기의 반영이다.

물론 유러통화의 약세를 점치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통합 첫차에 탑승한 회원국에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군이
포함되면 약세로 출발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영국 페인 웨버증권사의 앨리슨 코트렐 수석연구원은 "유러는 강세로
출발할수 있다.

그러나 금리인상 등 공동 금융정책이 필요할때 회원국간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 점차 약세로 반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유럽 재계 대표들은 유러강세가 수출위축으로 연결될수 있다는
사실을 제시, 유러를 지나치게 강세로 유도하는데는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에두아르 발라뒤르 프랑스 전총리도 "세계시장에서 유럽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유러를 지나치게 평가절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화폐통합의 실현 여부가 불투명한 지금 유러의 위력을 속단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유러의 부상은 달러 엔등 세계 주요통화간 위상 재편을 유발,
국제금융시장에 일파만파를 던질 것이 분명하다.

[ 브뤼셀=김영규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