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 Use)가 문화산업의 중요한 마케팅
기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나의 소재(소스)를 다양한 모습으로 재포장해서 팔아먹자는 것이다.

시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순식간에 영화로 만들어지고 다시 비디오로
옮겨져 판매된다.

시간이 지나면 같은 소재로 대학로에서 연극으로 올라간다.

또 TV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영된 뒤 한참 지나면 다시 비디오물로 복사되어
대여점 서가에 자리잡는다.

어떤 때는 만화로도 만들어진다.

만화가 인기를 끌면 이번엔 캐릭터사업이 기다리고 있다.

깜찍한 만화주인공은 모자나 티셔츠등의 의류는 물론 열쇠고리 자전거 등에
새겨져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낸다.

장정일의 인기소설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장선우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작품은 곧바로 비디오물로 나온 뒤 송승환에 의해 동명의 연극으로 무대
에 올려졌다.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화 "슬램덩크" 역시 만화영화와
극영화로 만들어졌으며 각종 캐릭터상품에 이용돼 고수익을 올려주었다.

문화산업에 있어 이처럼 "원소스 멀티유스" 마케팅이 중요해진 것은 우선
한가지 이야기라도 다양하게 맛보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뒷배경에는 작은 투자비로 최대한의 매출효과를 얻어내자는 기업들
의 전략이 깔려 있다.

영화 출판 비디오 등 문화상품은 원본을 만들 때는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가지만 복사본을 만드는데는 비용이 거의 안들어간다는 특징이 있다.

이른바 한계생산비용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소설 한 편을 찍어낼 때는 원고료 제판비 등 들어갈 돈이 많지만 재판에
들어가는 돈은 종이값 정도다.

이 소설이 영화로 제작될 때는 원작자에게 저작료 정도만 지불하면 된다.

비디오를 만드는 것은 더욱 쉽다.

또 소설의 인기가 이미 독자들에 의해 검증된 상황이어서 영화나 비디오
제작업자들은 비교적 안전하게 후속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원소스 멀티유스" 전략은 "흥행"을 만드는데도 중요하다.

영화와 비디오 서적을 한꺼번에 내놓고 다양한 이벤트를 병행하면
소비자들의 관심을 쉽게 끌 수 있다.

그만그만한 종목들이 어우러져 전체적으로는 붐을 일으키는 시너지효과
이다.

"원소스 멀티유스"의 개념은 사실상 신문 등 모든 지식산업에 적용될
수도 있다.

무한경쟁에 휘말린 신문사들이 최근 케이블TV 전자신문 위성방송 뉴스
전광판 팩스신문 맞춤신문(News On Demand) 등 사업다각화를 통해 복합매체
기업으로 탈바꿈하려는 것도 원소스 멀티유스의 무한한 가능성에 눈을 떳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원소스 멀티유스는 상품판매에 따르는 위험을 최대한 줄여
보자는 업체들의 고심이 깔려 있다.

문화산업의 성패는 흥행에 따라 좌우된다.

국산영화 한 편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15억원 내외.

"한번 터지면"(흥행에 성공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지만 관람객이
외면하면 쓰레기보다 못한 신세가 돼버린다.

그런데 이 "흥행"이라는 것은 귀신도 점칠 수 없다는게 문화판이다.

게다가 시장도 협소하다.

20억원을 들인 영화 한 편이 관객으로만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보통
15만명 정도는 들어야 된다는게 정설인데 좁은 국내 시장에서는 이 또한
만만치 않다.

당연히 투기적 성격이 강한 문화산업체로서는 안전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형태는 다르지만 호환성이 강한 상품들을 찾아 다양한 오락거리를 내놓는
것이다.

증권투자가들이 주식을 여러 종목에 분산투자해 안정성을 높이는
"포트폴리오"와 비슷한 이치다.

대형 영화제작사들이 극장 비디오업체 출판사 등으로 수직계열화를 하거나
기존엔 대형 스크린 하나를 운영하던 극장들이 서둘러 좌석수는 작지만
화면수는 많은 멀티스크린극장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들은 "문화사업에 거대자본이 투입되면서 원소스 멀티유스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이영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