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라의 도시개발 전과정에는 행정 및 정치중심지라는 켄셉이 녹아
있다.

위치선정과 건물배치, 도심과 위성도시의 연결 등 거시적인 부문에서
가로수 거리이름 등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의 원칙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해발 450m 내외의 평원지역에 도심을 꾸며 도시기능이 한 덩어리로
융화된 모습을 보이도록 한 것과 캐피털 힐, 시티 힐이 위성도시를
연결하는 개발축으로 설계한 것은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권력연계성과
조화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사당을 도심내 가장 높은 곳에 건설, 도심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주변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연출한 점과 위성도시들이 기능과
도로망에서 도심의 종속기능을 유지시킨 점은 주정부보다 높은 연방
정부를 표현한 도시계획상의 기교이다.

무엇보다도 인공호수인 벌리 그린핀호수를 경계로 마주보고 있는
케피터 힐(국회의사당 지역)과 시티 힐(행정부 지역)은 자연스런
행정부와 의회의 거리감을 의미하고 있다.

특히 국회의사당과 정부관공서지역 중간지점에 지어 연방대법원을
만든 것은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호주다운 도시를 만들려는 연방정부의 의지도 돋보인다.

정치구조 교통체계 거리이름까지 대부분 영국의 것을 모방하고 있는
호주의 현실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것이다.

미관을 위해 도심 일부지역에 화려한 수입수목을 배치한 것을
제외하고는 개발이전 캔버라지역에 있던 토착수목으로 조경을 꾸몄다.

거리와 위성도시의 이름도 리버풀 요크스트리트 등 영국 것을 그대로
따와 사용하는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호주의 예술가 행정가 정치가
시인 탐험가 교육가 성직자 등 호주역사를 빛낸 위인들에게서 차명했으며
호주산 식물 호주원주민의 부족명 등도 가미했다.

< 글 김태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