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칸짜리 사랑채를 자기가 기거하는 정방과 똑같은 모양으로 꾸미게
하였다.
그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 갈 무렵인 보름달 아침, 희봉은 평아와
풍아, 주서의 아내와 왕아의 아내 들을 불러 이상한 지시를 내렸다.
"너희들은 모드 흰옷으로 갈아입고 와, 오늘 어디 갈 데가 있으니까"
그리고 하인 홍아를 불러 흰 말이 끄는 흰 수레를 마련해 오도록
하였다.
"누가 상을 당했나?"
하인과 시녀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수군거렸다.
그런데 희봉은 옅은 청색 비단 저고리에 흰능사 치마를 입고 그 위에
검은 비단 두루마기를 걸쳤다.
그리고 머리에는 각종 화사한 은 장식품들을 꽂았다.
흰 옷으로 갈아입은 신녀들이 모여들자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희봉의
모습이 더욱 두드려져 보였다.
홍아가 온통 하얀 수레를 끌고 와서 희봉에게 물었다.
"마님, 어디로 가시려는지요?"
"우이저의 집으로 수레를 몰아라"
"네"
홍아는 속으로 크게 놀랐지만 짐짓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수레를 몰아
가련이 우이저를 위하여 새로 장만한 집으로 향했다.
오늘 아무래도 큰일이 나겠군. 고삐를 잡은 홍아의 두 팔이 긴장될
대로 긴장되었다.
흰 옷을 입은 시녀들은 희봉을 응위하고 앉아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머리속으로 그려보았다.
여차하면 우이저의 시녀들과도 한판 붙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금방 흰 옷은 흙먼지와 핏물따위로 더어워질 것이었다.
그런 싸움의 증거를 남기놓기 위해 흰 옷을 입으라고 하였나.
드디어 우이저의 집 대문 앞에 수레가 멎었다.
우이저의 시녀가 달려나와 희봉을 보고는 어찌할바를 몰라 홍아만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큰아씨께서 오셨다고 작은아씨께 아뢰어라"
홍아가 눈을 끔벅끔벅하며 우이저의 시녀에게 말하자 그제야 시녀가
정신이 난 듯 후닥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후, 우이저가 급히 옷을 갈아입고 겁먹은 표정으로 대문께로 나왔다.
희봉은 이미 수레에서 내려 두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희봉의 시녀들과 홍아는 정실부인과 소실의 첫대면 장면을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특히 평아는 희봉이 우이저를 저주하는 욕을 직접 들은지라 금방이라도
희봉이 우이저의 머리채를 잡아챌 것만 같아 조마조마하였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우이저가 허리를 굽혀 공손히 절을 하자 희봉도 답례하며 맞절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