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경기를 끝내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박세리는 한참동안이나
울먹이고 있었다.

그녀는 왜 울었을까.

우승을 놓친 것이 너무 분해서일까.

물론 분해서 눈물을 보였을 것이다.

그녀에겐 분명 우승찬스가 있었지만 그 찬스는 그녀의 "몰락"으로
인해 사라졌다.

승부사의 입장에선 자신의 부진으로 기회를 놓친 것만큼 더 가슴
아픈 게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만하면 너무 잘했다"고 얘기한다.

객관적으로도 그녀는 세계 무대에서 뛸 수 있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표가 "세계 정상"이라면 이번대회야 말로 그녀의
골프를 재 점검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다음은 이번에 박세리 골프를 보고 "느낀 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 박은 그녀가 3위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전반 9홀까지만해도 우승은 박과 소렌스탐의 경쟁뿐인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헬렌 알프렛슨 (스웨덴)은 후반 9홀에서 이글1에 버디3개로
31타를 치며 어느 틈엔가 2위로 올라섰다.

정상급대회에선 언제 어디서건 "위협자"가 돌출할 수 있다는 의미.

국내 대회는 한 두명의 싸움이지만 세계 무대는 참가선수 모두와의
경쟁임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 퍼팅은 그녀의 아킬레스건이다.

박의 보기는 90%이상 3퍼트에 기인했다.

3퍼트는 1~2m범위의 두번째 파퍼팅을 실패하는 패턴이다.

"차이"는 바로 그 미묘한 거리의 두번째 퍼팅에 있다.

소렌스탐은 최종라운드 첫홀에서 3온후 1.8m 파퍼팅을 넣었고 박이
버디를 잡은 6번홀에서도 1.5m 파퍼팅을 성공시켰다.

소렌스탐은 바로 그러한 퍼팅의 견고함으로 보기 숫자를 최소화하며
정상을 지킨 셈이다.

그런 파세이브 퍼팅이 박의 10보기와 소렌스탐의 5보기로 나타난 것.

그런데 이것을 뒤집으면 "대단한 격차"가 드러난다.

즉 소렌스탐은 "버디가 스치면 파"이지만 박은 "파도 보장이 힘든
퍼팅"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섬세함의 차이이다.

3번홀 (파4)에서 박은 이단그린을 올라간후 다시 내려가는 10m거리의
버디퍼팅을 했는데 볼은 홀컵을 무려 4m나 지나쳤다.

2번홀 3퍼트 보기에 이어 그곳의 3퍼팅이 실은 경기초반에 이미
승부를 결정지었다고 볼 수 있는 것.

아이언샷은 연습으로 평균적 정확도를 높일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쇼트게임의 섬세함 구축이 더 어려운 과제로 보인다.

<> "한 수 배우면 된다"는 대회시작전의 시각이나 "19세의 나이로
보아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평가는 부질없는 얘기다.

위대한 선수는 일찍부터 튄다.

니클로스가 그랬고 파머가 그랬으며 요즘엔 타이거 우즈가 그렇다.

그녀의 목표가 "세계"라면 이번 "한번의 기회상실"을 진정 아프게
생각해야 한다.

이를 욕심으로 생각하면 그녀의 갈길이 그만큼 멀어진다.

<> 그녀가 내년에 미국 무대로 나간다면 소렌스탐의 충고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미투어는 매주 이도시 저도시로 떠돌아야 하고 매주 코스가 바뀐다.

박의 경우는 집을 떠난 핸디캡도 상당할 것이다.

그녀가 미투어에서 뛸수 있는 실력임은 인정하지만 그 실력보다는
위와같은 점을 어떻게 견디느냐가 관건이다"

<> 이번 선전을 계기로 박에 대한 외부의 기대는 몇배 더 높아졌다.

박은 그러한 기대를 부담이 아닌 "정교함 증대"로 이끌어야 한다.

그녀가 이제까지 "미터 단위"골프를 쳤다면 앞으로는 "센티미터 단위"
골프를 치는 식이다.

"100"이라는 숫자가 현재 세계수준이라면 "200"을 목표로 해야 "100"을
넘는다.

< 김흥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