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화 <미 시세로스틸 사장>

얼마전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미TWA기 추락사건의 원인이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두가지 가능성으로 좁혀지고 있다.

그 첫번째는 일등석 바로 밑에 있는 화물칸에 적재한 폭발물이 원거리
전자 조정장치나 시한 폭파장치를 통해 폭발했을 가능성이고, 두번째는
단거리 지대공 샘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설로서 미사일에 의한 폭발설이
가장 가능성이 크며 실제로 미사일의 탄도궤적을 목격한 사람도 나타났다.

만일 우리나라 국적기가 북한의 영공을 날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수
있을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북한은 지난9월 스파이용 잠수함을 침투시키고 계획대로 되지 않자
집단자살-타살 등 살상을 일삼는 행태를 보였다.

이점으로 미루어보면 도저히 국제사회에서 서로 신뢰하고 협상할
상대가 되지 않을 뿐더러 우리나라 국적기를 그들의 영공은 물론이고
그 경계선에도 접근시켜서는 안될 것으로 믿고 있다.

또 북한이 제시하는 항공협상도 결코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 국적기에만 해당되는 주장이 아니고 북한을 제외한
전세계 항공사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항공기운항에 관한 안전상의
일반론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 영공을 우회할수 밖에 없는 탓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그 추가경비를 견적하기 전에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항로를
살펴보자.

지구 북반부의 동서향 비행은 일찍이 미국의 린드버그가 뉴욕발 파리행
비행노선을 그린랜드 영공을 거치는 북동향 비행으로 북위 15도 정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남동향 비행으로 아일랜드 영공을 거쳐 파리 비행장에
도착하는, 마치 사과를 수직으로 자르는 모양의 항공노선이 일반화되어
있다.

여기에는 비행거리도 한 요소로 작용하지만 동향풍을 안고 비행하는
것을 피할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후에 린드버그는 역시 조종사인 그의 부인 앤 모로 여사와 더불어
일본을 거쳐 중국까지 비행함으로써 아시아 항로를 개척했고 그것이
대략 오늘날 우리가 활용하는 항공노선의 시초가 되었다.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는 항로는 처음 북북동쪽,즉 백두산
상공을 거쳐 캄차카반도 연안과 알래스카를 잇는 지점까지 북상하였다가
다시 남동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정상적인 루트이다.

그런데 북한이 가운데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일단 일본 영공을
가로질러 태평양 연안까지 갔다가 북상하는 노선을 이용하고 있다.

회항하는 노선은 심지어 도쿄 근방까지 남하했다가 다시 북상해
포항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는 형태를 띠게 된다.

북한을 우회하는데 소요되는 비행시간은 대략 2~3시간 정도가 된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비행기 1대당 5만달러나 된다.

출항기 회항기 유럽행 노선 및 화물기를 다 합쳐 하루평균 12회정도
이 노선을 운항한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매년 2억달러라는 큰 돈을
허공에 날리며 비행하는 셈이 된다.

이웃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 항공산업의 경쟁력저하 요소가 되며 우리는
그만큼 더 생산성을 높여야 살아갈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북한과의 항공협정이 체결되면 매년 2억달러의 돈을 절약하는 경제성이
생겨난다.

뿐만아니라 백두산 위를 날아가기 때문에 천지를 내려다 볼수있고
드넓은 고구려 예터를 한눈으로 볼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소년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젠 불변의
진리로 굳어졌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몇 안되는 테러 최적국가중의 하나이다.

오랫동안 저질러온 테러전과나 지난달 잠수함침투 및 공작원 승조원의
집단자살과 타살 등의 행태로 미루어 볼때 그들의 정신상태는 아무래도
정상적인 차원을 넘어선 광적인 영역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더구나 북한은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완전고립되어 왔고 대화의
통로가 별로 없다는 점도 중요시되어야 한다.

북한은 또 고성능 무기를 생산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고 유도탄 미사일
등을 제3국에 수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황이 이럴진대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자기네 영공을 날으는 민간
여객기에 미사일을 쏘아 격추시키는 것은 우리나라 학생들이 컴퓨터를
활용하는 것 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TWA기 사고처럼 비행기가 완전 파괴되었을 경우 시치미를 떼면
확인할수 없다.

그런데 북한은 그들의 전례로 보아 충분히 그럴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개연성이 전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한 북한과의 직-간접 항공협상은 즉각 중단되어야 하고 북한
영공통과의 위험성을 전세계에 알려야 한다.

우리는 이 기회에 더욱 우리자신의 마음가짐과 항공안전에 관한 경계를
새롭게 해야 한다.

항공사고는 대형사고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있어야 할 통일에 대비해 지금부터라도 북한을
회유하고 대화하며 협조해야 할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상정해본 연간 2억달러의 추가경비는 해가 갈수록 불어날 것이고
남북분단 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욱 커질 것이다.

그 2억달러의 1할을 나누어 북한 회유에 쓸수 있기를 희망한다.

북한의 체제와 사상이 미운것이지 우리의 형제자매가 미운것은 아니다.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