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국책사업의 하나인
경부고속철도공사와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차라리 고속도로를 하나 더 건설하는 편이
낫다는 타당성시비가 많았으며 사업이 확정된 뒤에는 노선통과 및
지하구간 여부를 둘러싼 지역갈등이 심했다.

게다가 잦은 설계변경으로 공기지연및 공사비증가가 예상되며 최근에는
상판설계부실로 교량공사가 전면중단된 상태라는 언론 보도가 터져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가.

지난 몇햇동안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렀고 그토록 부실공사방지를
다짐했건만 왜 이모양 이꼴인가.

가장 큰 잘못은 계획단계부터 졸속과 부실이 많았다는 점이다.

경부고속철도공사는 총연장 430km 에 공사비가 93년 기준으로
10조7,000억원이 넘게 드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대형공사를 추진하는데 노선선정 기초측량
설계 부지매입 차량기능결정 등의 기초적인 사항들이 충분한 검토없이
외부 지시에 따라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들은 대형 국책사업이 아니라도 치밀한 사전조사와 준비를
거쳐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렇게 마구잡이식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 공기지연이나 공사비증가는 둘째치고 공사의 안전성을
어떻게 확신하겠는가.

만에 하나 졸속공사로 서둘러 완공된뒤 안전사고라도 나는 경우를
상상해보라.

일반국민의 불신은 불을 보듯 뻔하며 그렇게 되면 엄청난 돈이 투입된
경부고속철도는 국민경제에 부담만 주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지적할 것은 정치논리의 개입으로 인한 부작용이 엄청나다는
점이다.

원칙대로라면 먼저 지형조사와 측량을 철저히 한뒤 노선이 결정돼야
하는데 측량도 하기전에 노선이 결정되고 여기에 맞춰 설계를 하다보니
무리가 따르고 설계변경이 잦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로 경주노선변경, 대전및 대구구간의 지하화문제 등을
들수 있다.

또 한가지 지적할 것은 전문지식이 없는 행정관료들이 일방적인
지시를 남발함으로써 엄청난 폐해를 끼쳤다는 점이다.

경부고속철도사업을 도맡아 관장하는 창구로 지난 91년 12월에 법규정을
만들어 "한국고속철도 건설공단"을 출범시켰지만 중앙정부의 인허가와
지시, 지방자치단체의 민원에 밀려 속수무책이었다.

예를 들어 예산절감을 위해 설계나 공법을 바꾸라고 지시했다니 옷에
몸을 맞추라는 망발과 다름없지 않은가.

게다가 고속철도공단안에 특정그룹이 득세하여 중요한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니 무슨 일이 제대로 됐겠는가.

이렇게 중요한 대목마다 문제투성이니 고속철도사업의 지연이
불가피하다는 예측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프랑스측 계약자인
알스톰사에 거액의 배상을 하게 되리라는 민감한 내용까지 보도되고 있다.

관계당국은 서둘러 진상을 조사해 문제가 있다면 관련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하며 뒤늦게나마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개선대책을 마련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