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켄터키주 작은 마을에 한 소년이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이 소년의 꿈은 경찰관이 되는 것이었는데, 꿈을 이루기는 커녕 병상에
누워 힘겨운 마지막 투병을 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경찰서에서는 소년을 일일 명예경찰서장으로
추대했다.

경찰복장에 모자, 번쩍이는 견장까지 달고 지휘봉을 든 소년은 너무나
즐거운 하루를 지냈다.

그리고 다음날, 행복한 미소를 띠고 숨을 거두었다.

마을 경찰은 소년의 장례를 경찰장으로 엄숙하게 치러 주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병상에 있는 어린 환자를 즐겁게 해주자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모아 지금은 세계적으로 가장 큰 기금중 하나가 된
"소원풀어주기 기금"(Make-A-Wish Foundation:MWF)은 이렇게 시골마을의
작은 에피소드에서 출발한 것이다.

필자의 딸도 미국의 한 어린이병원에 입원했던 덕에 MWF의 혜택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이 기금에 대해 알지 못했던 필자는 아이의 소원을 모두 들어준다는
제안을 받고 참 황당했었다.

MWF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자원봉사자가 있어 환자의 집을 방문해
아이의 소원이 무엇인가 알아내고,그 소원을 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환자는 현금과 새 자동차를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소원을 말할 수 있으며
그 소원은 대부분 이루어진다.

처음 이 제안을 받고 소원을 생각하려니 참으로 막막했다.

그리고 "세가지소원"이라는 동화가 생각났다.

선녀가 착한 노부부에게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노라고 했다.

할머니가 별 뜻없이 소시지가 먹고 싶다고 중얼거리자 소시지가 나타났고,
화가 난 할아버지가 그 소시지 할멈한테나 붙어라 하자 정말 그대로 되었다.

당황한 노부부는 제발 이 소시지를 떼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으로 세가지
소원을 다 소비해 버렸다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어린 환자들의 소망은 다양했다.

디즈니랜드 구경, 고적대 행진, 여왕이나 대통령을 만나보는 것, 마이클
잭슨이나 마이클 조단과 하루를 지내보는 것, 그밖에도 어른들이 하찮게
생각하는 여러가지를 원했다.

실제로 MWF에서는 이런 소원을 대부분 들어준다.

좋아하는 농구선수와 온종일 농구를 하고, 영국의 공주를 만나게 하는
일들을 기금의 돈과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주 만족스러워 하며 평생의 추억으로 삼든가,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그 추억과 함께 편안히 영면하는 것이다.

당신의 소원은 무엇인가.

이렇게 물을 때 많은 돈 큰집 새차 보석 이런것 말고 단호하게 대답할
그런 소망이 과연 있는가.

우리의 소원은 대부분 물질적인 것이다.

아이가 장난감을 원할 때 아이는 장난감이라는 물건을 원한 것이 아니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즐거움을 원한 것이다.

그러나 자라면서 그 순수한 바람을 잃어간다.

또한 우리 사회는 그 즐거움마저 내가 즐겁기보다는 남의 눈에 즐거워야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직업 출세 성공의 기준도 정해져 있어서 그 범주에 들지 못하면 못난
사람, 들지 않으면 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요즘 온갖 사회의 기현상이 소망과 열정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과장이 될까.

서태지나 마이클 잭슨을 좋아하는 그 열정같은 것이 저마다 있어 각각
제 좋은 일에 전념할 수만 있다면 대학입시과열도, 과소비도, 모든 사회
활동의 불균형도 사라지지 않을까.

정말 이 한가지만 할 수 있다면 평생 한이 없겠노라고 하는 그런 간절한
소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보다 화려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