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말이다..."

대부인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며 입을 열었다.

"그 소문을 보채가 듣고 정말로 여겨 그 동안 기대해 오던 혼사가
이루어지지 못할 줄 알고 크게 낙심을 하면 어떡하느냐?

우리가 대옥에 대해 염려하는 일들이 보채에게 일어나지는 않겠느냐?

그리고 대옥이는 그 소문으로 혼사에 대한 기대에 부풀 텐데 나중에
그게 아닌 것을 알고 또 얼마나 낙심을 하겠느냐?"

왕부인은 그것도 문제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대옥으로서는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아는 편이 나은지도 모르지"

희봉이 아랫이빨로 윗입술을 한번 물었다가 대답하였다.

"그러니까 이 소문은 보옥 도련님 한 사람에게만 들어가도록 내자는
것이지요.

보옥 도련님을 모시고 있는 시녀들이 수시로 그 소문을 보옥 도련님에게
들려주도록 하고 저도 보옥 도련님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러다 보면
아무리 정신이 멍해진 도련님이라 하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는 때가 있겠지요.

그대신 시녀들을 단단히 단속하여 소문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해야지요"

"과연 그게 가능할까?"

대부인이 마른 기침을 두어 번 뱉어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소문이 새어나가든 새어나가지 않든 그 문제는 크게 걱정하실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보채 아가씨나 대옥 아가씨보다 먼저 보옥 도련님의 마음과 목숨을
간수하는 일이 중요하잖아요.

누가 낙심을 하고 슬퍼하든 우선 보옥 도련님이 살고 봐야지요.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슬픔을 당하는 일쯤은 여자든 남자든 누구나
일생에 한두 번은 겪게 마련이지요.

보채 아가씨나 대옥 아가씨는 우리가 염려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마음이
강한지도 모르지요"

"하긴 그래.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 독한 면이 있으니까 잘 견딜 수도
있을 거야.

근데 문제는 보옥이 대옥이랑 혼인을 하는 줄 알았다가 그게 아닌 것을
나중에 알고 증세가 심해져 더욱 발광을 하면 어떡하지?"

왕부인으로서는 보옥이 이래도 염려스럽고 저래도 염려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희봉도 그게 염려가 되는지 휴, 가만히 한숨을 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제 생각에는, 보옥 도련님이 대옥 아가씨와 혼인을 하게 되었다는
소문을 들으면 십중팔구 크게 기뻐하면서 정신도 조금은 좋아질 거라고
여겨져요.

그러면 사리분별이 생겨 자기가 치른 혼인에 대해 책임을 질 줄도
알겠지요"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