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쩍 많은 사람들이 우리 경제에 대해 비관적 견해를 갖게 되는
모양이다.

이대로 가다간 경제성장률은 7% 이내, 국제수지적자폭은 150억~200억
달러, 물가상승률은 5% 내외가 시현될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고,
내년이라고 거시경제지표가 금년보다 낫기를 기대할만한 근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측면에서 불안해 할만한 이유가
제법 많다.

국민경제의 기초단위가 되는 기업차원에서는 금년도 상반기 채산성이
경기바닥 수준이던 93년 상반기와 마찬가지이고, 금융비용부담률이나
어음부도율도 재차 상승단계에 이르렀다.

국민경제의 효율성을 대표하는 생필품가격수준이 미국보다 15% 내외
높다는 사실, 자본재부품 소재 기술 등 측면에서 대외의존도는 계속 높은
상태이고, 자본시장과 상품시장의 개방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환율과 금리
주가의 흔들림이 심해지고 있으며 그만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
소득계층이나 연령계층, 기업규모나 업종별 적응능력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 사회의 불안감을 확대시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국내외 환경변화가 심한 만큼 제반가격이라도 제때 제때 변화를
해서 수요량과 공급량을 균형시켜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반은
보이고 반은 안보이는 손"에 의해 물가와 주가 채권이자율 등이
관리된다는 사실, 성장이 되긴 하는데 수출수요보다는 내수, 투자보다는
소비, 설비투자보다는 건설투자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성장
잠재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현재와 같은 경제현실은 수없이 많은 요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가장 가깝게는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 주력수출품의 가격급락과 엔화
절하에서 찾을 수 있지만 좀 멀게는 흔히 얘기하는 고비용저효율의 사회적
제도와 관행에서 연유한다.

또 경기순환과정상 지난 3년동안 경기회복 고지에 올랐기 때문에 이제는
내려갈 때라는 자연법칙으로도 일부 설명된다.

그리고 조선이나 석유화학산업은 기업계 스스로 과잉설비경쟁에
몰입했었기 때문에, 건설산업은 면허자유화에 따른 과당경쟁에다 부동산
경기억제정책때문에, 재래시장 등 유통산업은 시장진입확대때문에,
중소기업은 금융실명제실시와 동시에 취했어야 하는 보완조치 부족과
내수시장개방속도 그리고 임금인상폭때문에, 제조업은 방향조차 불투명했던
노동정책때문이라고 말할 여지는 충분하다.

지난 몇년간 이와같은 요인들이 잠복하고 계속 추가되는 사이에 오늘의
문제는 자라나고 표출되었는데 지난 3년간의 경기부양정책과 해외의 특수
경기때문에 우리의 취약점이 가려졌을 뿐이다.

이상과 같은 원인분석을 전제로 하면 금년과 내년경제와 관련해 갑작스레
해외에서 특수한 수요가 새로 생기거나, 국내정치가 화끈하게 달라져서
엄청난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국민들이 대오각성해서 근검절약과 근면
협조의 새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한 큰 기대를 않는게 정상일 것이다.

물론 지난 35년간 산업화의 역사 속에서 우리경제가 아주 어려워졌을때
하나님의 보살핌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천수답보다는 수리안전답을 선호하는 것처럼 나름대로
대비를 해야 다리를 뻗고 잠을 자고 후세에게도 콘소리를 칠만한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지는 몰라도 지난 3일 재정경제원
장관이 발표한 "안정속에 기업활력 회복"대책은 몇가지 긍정적 특징을
갖는다.

첫째는 거시정책보다 미시정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가능한 대책은 거의 동원되다시피 하면서 동시 진행시키는데 몇가지
구체적 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부분은 시한을 밝히면서 별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다.

둘째는 제도적 개선과 행정력의 동원을 병행한다.

또 국세청동원이냐 라는 거부감을 주고 있지만 정책과제별로 주무부처를
지정하면서 매월 점검하겠다는 의지표명은 정부의 실천력에 대한 믿음을
과거보다는 더 주고 있다.

셋째는 땅값과 임금.금리 등 고비용 구조의 시정문제와 씀씀이 억제
문제를 동시에 거론하면서 각계각층이 부담할 분야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넷째는 과거 몇년동안 논의를 거듭하던 사회간접자본에의 민자유치문제,
수도권내 공장입지규제완화문제, 규제개혁문제가 실천단계에 접근하고
있구나 라는 기대를 갖게 하며 정보통신산업과 자본재산업육성정책의
지속에서 미래산업전략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갖고 있는 위기의식을 일반국민들 차원으로
확산시키는데 성공한다면 일정기간후 재도약의 계기를 찾을 수 있겠구나
라는 믿음도 생길 만하다.

그러나 몇가지 회의는 계속 남는다.

주로 정치적 판단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분야이다.

첫째 노동관계법의 개혁과 공권력의 적극개입없이 과연 노동부가 맡은
추진과제는 실천될 수 있을까.

둘째 공기업 민영화나 최소한 공기업이 영위하고 있는 사업분야에 강력한
경쟁체제를 도입하지 못하면서 그리고 공공부문의 조직을 축소하거나 과잉
PR을 자제하지 못하면서 또한 내년도 정부예산규모를 경상GNP 증가율
수준으로 낮추지 못하면서 국민들보고 허리띠 졸라매기에 동참하라는
호소가 과연 유효할까.

셋째 정치논리에 따라 오락가락하던 대기업정책과 부실화가 진행되는
금융산업 관련정책은 새로운 결심을 다음 정권으로 미루는가.

넷째 교육 법률 의료 환경 교통 통신 기타 생산적 서비스산업은 대외
개방을 서둘러서라도 효율적으로 만들어야 국민들이 불필요하게 금전적
시간적 정신적 비용지출을 줄일 수 있는게 아닌지.

다섯째 임시방편으로 취한 공공요금동결과 국고자금방출 등은 과연 자원
절약과 체질개선을 유도하는 방향과는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궁금하다.

임시적 저축유인제도는 추가적 소비절약이 수행되지 않을 것이며
근로자들의 능력개발을 위한 프로그램 제시도 눈에 띄지 않는다.

어찌되었던 대부분이 강력한 세력인 우리사회의 비효율부문을 앞으로
집중적으로 합리화하면서 미래의 성장분야를 꾸준히 키워 나가지 못한다면
또 계속 부지런한 사람들의 사소한 실수나 비판 처벌하면서 새로
형성해내는 일 없이 인심 잘 쓰는 사람을 우대한다면 경제난국으로부터의
도피는 가능할 지 몰라도 탈출은 기대않는게 옳다.

정치의 계절에 경제팀의 건투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