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개정 등을 통한 대기업집단에 대한 규제가 당초 발표됐던
것보다는 상당폭 완화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는 재정경제원이 30일 내놓은 "경영투명성 제고방안"에 사외이사제
연결재무제표도입 등이 제외되거나 보류되고 소수주주권 행사요건이
당초보다 강화된데서도 엿볼수 있다.

상장기업 대주주에 대한 가지급금 대여금제공을 전면 금지하려던
방침도 보류됐다.

"종전방침에 변화가 없다"는게 공정거래위의 공식입장이긴 하나
계열사간 채무보증을 궁극적으로 전면 금지하려던 방침도 백지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변경은 위축된 기업마인드 회복에 보탬이 될
것이기 때문에 환영할만 하다.

그동안 정부가 내놨던 이른바 "신대기업정책"중 상당부분은 부작용의
우려가 적지 않았고 업계의 반발 또한 없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중 일부를 보류하거나 완화한 것은 당연하다고 보며,
방침을 바꾸었다고 해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이라고 문제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두말할 것도 없이 경제정책은 그것이 지향하는 관념적인 목표나 방향에
못지 않게 현실성과 시기가 중요하다.

대기업 경영활동에 굴레를 씌우려는 정책을 경영환경이 급격히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들고나온 것은 시의적으로도 맞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시장개방 경기후퇴가 겹쳐 날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현상황에서는
기업들을 앞만 보고 뛰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정부의 당초 안에는 현실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외이사제이다.

이해관계도 없는 회사밖 사람 몇몇을 비상임 이사로 영입한다 해서
그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이 달라지고 공익성이 제고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현실인식이 잘못된 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계열사에 대한 지급보증과 대주주에 대한 가지급금을 금지하려던
방침은 경제력집중억제 대주주전횡방지 등을 명분으로 한 것이지만
현실성은 물론 법리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계열사 지급보증문제는 금융관행의 개선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가야할 성질의 것이고, 특정 대기업에 대해서만 이를 금지하는 것은 법의
형평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대주주에 대한 가지급금지급은 즉각 공시토록 의무화하되 이를
금지하는 조항은 신설하지 않기로 했는데, 순리라고 할 수 있다.

경영정보보호 차원의 회계처리 등으로 때로는 가지급금형식의 지출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볼때 이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무리다.

가지급금이 회사자산의 변칙적인 이전이라면, 이는 사후적으로
세무차원에서 응징할수 있다.

우리는 이같은 정부의 대기업정책 재조정이 계기가 돼 경제정책에
대한 정부와 재계간 긴밀한 협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대기업정책도 정.재계간 상호신뢰와 원활한 의사소통이 있었다면
이번과 같은 갈등과 마찰의 과정은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국민경제의 두 축이라고 할 정부와 재계가 이번 신대기업정책의
전말을 통해 깨닫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