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까운 사람 몇이서 조촐한 저녁식사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우리일행중 한 명과 안면있는 어떤 신사분이 우연히
합석하게 됐다.

광고회사를 경영하는 연세가 지긋한 분이었는데 식사 분위기에는
전혀 맞지 않는 사후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 놓았다.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요즘 시인들의 시야가 좁다며 전생과 후생까지
소재로 삼아야 온전한 시사상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참다 못한 어떤 이가 좀 쌀쌀맞게 그런 분야엔 관심이 없다고 한 마디
하자 벌컥 화를 내며 일어서 가버리는 게 아닌가.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우린 너나없이 참으로 대화에 서툴다.

말하기는 물론 듣기 훈련도 잘 안 돼 있다.

올바른 대화법을 제대로 배우고 익힌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인 지도
모른다.

요즘은 초등학교 교과에 "말하기 듣기"란 시간이 있지만 실질적인
대화 훈련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정폭력과 청소년 탈선의 원인을 대화부족 탓이라고
몰아붙인다.

또 국회의 낯뜨거운 삿대질과 고성의 원인 역시 대화훈련이 안된
결과라고 말한다.

진단은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처방이 항상 미흡하다.

아니 처방이 없다.

그러니 그에 따른 투약, 치료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바람직한 대화법이 하루 이틀에 익혀지는 건 물론 아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서서히 고쳐나가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대화법은 이론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실제 훈련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우선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일정시간 이상 "대화훈련"과목을
이수토록 하면 어떨까.

그리고 평생교육원 문화센터같은 곳에 "대화방"을 개설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강사가 일방적으로 이론을 설명하는 식이 아니라 어떤 주제를 놓고
참여자 전원이 직접 말하고 듣는 워크숍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화제의 빈곤도 자연히 극복될 것이다.

한 두 마디면 바닥나는 신변잡담 수준에서 벗어나 사랑 야망 재능같은
인간의 본성에서부터 문화예술 철학 정치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화제거리를
가질 수 있게 되리라.

이렇게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대화법을 익히며 자란다면 인간관계가
얼마나 더 활기있고 아름답겠는가.

간혹 부부동반 모임에 가보면 남성은 남성끼리, 여성은 여성끼리
모여서 별 것 아닌 이야기만 나누다가 돌아오는 경우를 보게 된다.

때로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성과 어울려 그들의 시각으로 보는 세상을
듣고 싶고 새로운 매너도 접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일 텐데 말이다.

이점은 남성들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한다.

각 단체의 모임에서도 원로는 원로끼리, 후배는 후배끼리 모여 먹고
마시다가 헤어진다.

몇십명이 한 자리에 모여도 실제 만난 사람은 몇명에 지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니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도 사람도 거의 없다.

딱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선배들이 솔선수범하여 후배들 틈에 끼여 대화의 문을 열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또 후배들도 괜히 경직되어 있지 말고 마음의 문을 열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갈 때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다.

욕심을 내자면 대학로같은 곳에다 영국에 있다는 "스피치 광장"을
만들면 더욱 좋겠다.

그렇게 되면 앞의 그 식사분위기를 망쳤던 신사분도 "전생과 내생"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실컷 피력할 수 있을 텐데.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