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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일 청와대 사회복지수석은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다.

상황에 밀려서 일을 하기보다는 일을 통해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간다.

일에 대해서는 다분히 공격적이다.

그는 최근 번역한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서문에서 인간을 두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당위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과 무엇을 할수
있는가 하는 자기능력을 먼저 점검해보는 사람으로 구분했다.

자신은 전자에 속하며 해야 할 일이라면 우선 시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사는 것이 항상 분주하고 때로는 힘들게 느껴지곤 한다고
말한다.

그가 서울대 법대교수를 하다가 청와대에 들어와 교육개혁, 사법개혁,
복지구상, 환경구상, 신노사구상 등 굵직굵직한 개혁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개인적 성향과 무관하지 않은 것같다.

문민정부의 마지막 개혁작업이라고 불리는 노사개혁에 몰두하고 있는
박수석을 청와대 비서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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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김형수 정치부장 ]]]

-노사관계개혁위원회가 6차례의 공청회와 종합토론회를 마쳤습니다.

이달중으로 개혁안이 나오는 겁니까.

"노개위에서 지난주 "노동법개정요강소위"를 구성, 구체적인 노동관계법
개정안 마련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아마 3~4주 걸릴 것으로 봅니다.

9월에 들어가야 어느 정도 합의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노개위의 역할은 형식적 절차를 밟는데 불과하고 청와대에서 "밑그림"을
갖고 노사개혁을 시작했다는 일부 시각이 있습니다.

"그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안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개위가 독자적으로 개혁안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보고 하면 정부는 이를
기초로 정부안을 만들 것입니다.

그 다음 정부의 법개정안을 국회로 보내게 됩니다.

정부안은 전적으로 노개위안을 전제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노개위에서 충분한 의견수렴이 이뤄져 공통분모를 찾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정부가 구체적인 안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하셨지만 큰 흐름에 대한 정부
입장은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건 대통령께서도 신노사구상을 통해 밝혔습니다.

대원칙은 노사대결의 시대를 마감하고 노사화합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죠.

노사대립은 과거 근대화.산업화시대의 틀입니다.

지금은 세계화.정보화시대에 맞는 노사화합의 새로운 틀이 필요한 시점
입니다.

노사 일방에 유리하면 타방에 불리하다고 하는 노사대립의 틀을 이제는
노사 모두에게 유리할수 있다는 틀로 바꿔야 합니다.

노사관계가 소위 승-승(WIN-WIN) 게임이 돼야 합니다.

공생의 관계가 돼야죠.

사회가 산업화시대에서 정보화시대로 바뀌는 문명사적 변화에 따라
노사관계의 제도적 틀도 바꿔야한다는 것이죠.

정부는 이러한 신노사구상의 방향과 철학은 갖고 있으나 구체적인 사항은
노개위에서 1백% 자율적으로 결정할 겁니다"

-복수노조, 제3자개입, 변형근로제, 정리해고제 등은 노개위에서도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청와대에서 조정하실 자신이 있습니까.

"견해차해소를 위해서는 노개위에서 노사대표에 대한 공익위원 전문가
학자들의 설득작업이 가장 중요한 과정이 될 겁니다.

노개위는 노사대표 전문가 공익위원들이 각각 3분의 1로 구성됐습니다.

이것은 노사개혁이 노사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겁니다.

노사 당사자의 합의도 중요하지만 국민적인 납득이 있어야 합니다.

신노사구상에서도 밝혔듯이 앞으로는 "국민경제발전과 같이 가는
노동운동" "참여와 협력의 열린 경영"이 필요합니다"

-설명이 약간 추상적인 것 같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예컨대 노동시장의 유연성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앞으로의 세계화.정보화시대는 국가간 기업간 무한경쟁의 시대입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국민경제발전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외국은 유연한 노동시장을 갖고 있고 우리는 경직된 노동시장을 갖고
있다면 우리가 불리합니다.

이것을 어떻게든지 풀어야 합니다.

이는 국민경제적 요구이기도 합니다.

근로자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고 근로조건을 악화시키지 않는 방향에서
이 문제를 푸는 것이 "국민경제와 같이하는 노동운동"이라고 보면 됩니다"

-노사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공감대가 노개위에서 어느정도 형성돼
있다고 보십니까.

"노사개혁은 노사제도의 합리화.선진화가 목표이기 때문에 전문가들간에는
어떤 내용이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아마 노동법학자 노동경제학자 경영학자들을 모아놓고 보면 90%이상이
동의하는 합의내용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아직도 노사 당사자들의 생각이 노사 대립의 틀속에 젖어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노사개혁은 "옛날 생각"과 "새로운 생각"과의 싸움입니다.

과거에는 노사 갈등과 대립을 당연시 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노사가 하나로 되지 않으면 공멸합니다.

세계화의 경쟁에서 노사화합을 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이 경쟁하면
누가 이길 것인가는 자명합니다.

우리나라의 노동관련법은 미국에서 1930년에 만든 와그너법을 모방해
1950년대에 만들었습니다.

30년대 미국에서 생긴 와그너법은 노사갈등과 대립을 전제로 갈등을
해결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법체제입니다.

이제는 노사협력을 조장하는 법체제로 나아가야 합니다.

1980년대중반까지 일본에 뒤지던 미국이 80년대후반부터 일본을 이기기
시작한데는 미기업들의 노사관계 혁신이 주된 요인입니다.

IBM GM 등 미국을 대표하는 초우량기업들은 노무인사관리의 혁신을 통해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노사화합을 통해 생산성제고를 이룩한 겁니다.

근로자를 경영의 파트너로 삼아 경영에 참여시켰고 노조는 생산성을
책임졌습니다"

-정부가 마련하게 될 노동관계법개정안의 국회통과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얼마전에 국회의원들에게 앙케트를 돌린 적이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노사개혁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정부의
개혁의지를 꼽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노사합의를 중시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여야합의 순이었습니다.

따라서 정부의 확실한 의지와 당사자간의 합의가 있으면 국회합의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국민들이 납득하는 노사합의안을 만드는게 중요하지요"

-재계일부에서는 박수석을 친노조성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인식이 왜 생겼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초 대통령께서 신노사구상을 발표하셨을때 정부는 법개정문제를 먼저
논의하면 노사개혁이 제도개선에만 그치고 왜소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신노사구상이 발표되고 2~3개월간은 노사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그런 다음 21세기를 향한 법개정
문제로 넘어가는게 개혁작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복수노조, 제3자개입금지, 정치활동금지 등에 손대는
것으로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OECD 가입을 위해 그러한 절차를 밟는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언론이 이 3가지 이슈를 중심으로 신노사구상을 몰고가는 바람에 기업쪽
에서 노조주장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오해가 생긴 겁니다.

또 한국통신 서울지하철노조의 해고자복직과정에서도 오해가 생겼다고
봅니다.

정부는 그동안 사용주가 기업경영의 차원에서 하는 복직여부에 대한
판단을 존중해 왔습니다.

물론 해고근로자 복직이 단체교섭의 대상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말이죠.

한통의 경우도 경영책임자가 노사화합차원에서 강력히 원했기 때문에 o
복직이 이뤄진 겁니다.

경영자가 복직을 원하는데 정부가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짧은 기간동안에 압축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경제가 이만큼 성장한데는
대기업의 공헌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론이 있을수 있지만 지난 30년동안의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대기업의
기여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대기업은 국민기업적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너무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대기업이 단순히 개인이나 가족의 치부수단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국민들이나 종업원들이 갖는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개인소유라고 하더라도 국민기업적인 철학과 기업문화, 기업이미지를
구축해 나가야 합니다.

일본의 미쓰비시나 미쓰이 등은 어느정도 국민기업화돼 있다고 봅니다.

정보화.세계화시대가 되면 개인기업보다 국민기업적 기업이 더 발전합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아직 국민기업적 이미지가 약합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국민기업적 이미지가 약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오너중심의 기업경영은 결단력이 있고 자기책임을 지는 등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의 장점을 함께 살리고 조화시킨 한국적 기업지배
구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80년대말부터 미국기업이 일본기업을 이긴 이유중에는 노사관계혁신
이외에 기업지배구조의 개선도 꼽히고 있습니다.

미기업들간에 미국식 전문경영인제도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 각국의
기업지배구조를 상당히 연구했죠.

세계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어느 것이 보다 효율적 기업지배구조인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은 시스템으로 경쟁하는 시대입니다.

세계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기업지배시스템과 노사시스템을 세계화
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들의 최종목표는 물론 국가경쟁력 제고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세계적인 일류기업이 되려면 한번 더 뛰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해온 것 이외에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개혁프로젝트가 있습니까.

"새로운 것을 하기보다는 시기적으로 이제까지 해온 것을 성공적으로
보완하고 보강하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제까지의 개혁구상은 어떻게 나온 것입니까.

"대부분 커다란 개혁구상은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나왔습니다.

세계화구상은 대통령께서 시드니에서 돌아와 가시화됐고, 복지구상은
코펜하겐 사회개발 정상회담에 참석하신후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교육개혁은 대통령 공약사항입니다.

대통령께서 기본방향과 원칙을 정해주면 담당수석실에서 이를 정리
발전시켜 왔습니다"

-개혁작업을 해오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어려웠던 점은 "과거생각" "옛날 생각"하고의 싸움입니다.

내자신이 갖고 있는 과거생각도 문제지만 우리 모두의 과거생각이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투쟁을 통해 민주화를 쟁취했지만 그 다음 새로운
민주질서를 창조하고 건설하는데 필요한 민주적인 훈련과 의식은 크게
부족했다고 봅니다.

개혁은 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에서 불편하더라도
참아야 합니다.

국민 모두가 이익집단화되면 개혁은 어렵습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다가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꾼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법학전공자는 대부분 사회정의를 얘기합니다.

그러나 정의를 실현하려면 사회가 먼저 풍요로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경제학은 국부증대에 관한 학문이잖아요.

가난한 사회에서 정의실현은 어렵다고 생각해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회가 풍요로워지려면 사회전체가 정의롭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법치가 제대로 서야 시장경제가 제대로 운영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즘은 법경제학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 정리=최완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