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러시아는 옐친의 건강문제로 야기된 권력공백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같은 의문은 최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건강이상설과 맞물려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러시아 최대의 현안이다.

지난 9일 열린 옐친의 집권2기 취임식은 당초 계획보다 대폭 축소돼
옐친이 대통령취임선서를 하는 것으로 30분만에 간단히 끝났다.

크렘린궁측은 행사규모의 축소를 어려운 국가 재정탓으로 돌렸으나 그걸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거유세기간부터 불거져나온 옐친의 건강이상설이 이젠 더이상 설로만
그칠 것 같지 않다.

엘친은 취임식전 한달가량의 휴가에 이어 취임식후 곧바로 또다시
3주가량의 휴가를 떠날 것으로 전해졌다.

산적한 현안들을 뒤로한 채 신임대통령이 한가로이 휴가나 즐긴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측근들은 다만 옐친이 유세기간중 강행군으로 탈진상태에 빠졌을뿐 그의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또한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옐친의 건강이상은 결과적으로 그의 존재가 러시아 민주화와 정국안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적어도 앞으로 몇개월동안은 "예스"다.

대선정국에서 방금 빠져나온 러시아는 지칠대로 지쳐 있다.

만에 하나 최고지도자 "유고"시 엄청난 돈과 정력을 쏟아부으며 또
한차례의 큰일을 치를만한 여력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 이유 말고는 행정수반으로서 옐친의 역할은 그리 클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좀더 정확히 말해 뛰어난 참모들이 그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의 주변에는 신명을 바쳐 일하는 충성심 강한 인물이 많다.

빅토르 체르노미르딘총리를 비롯해 최근 대통령행정실장겸 수석보좌관으로
복귀한 아나톨리 추바이스, 알렉산더 레베드 안보회의서기 등이 그들이다.

이들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개혁파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추바이스를
주목하고 있다.

크렘린궁으로 재입성한 추바이스가 지금까지 진두지휘한 사유화 정책 등
경제문제에 깊숙이 개입할 것이라는 전망은 그리 힘들지 않다.

그는 그러나 대통령보좌관들이 경제문제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경제및 금융정책은 행정부가 알아서 할일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의 주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근 단행된 경제부처개각을 미리부터
예견한 듯한 인상이 짙다.

즉 주요경제포스트에 자기사람을 심어놓고 자신이 추진해온 경제개혁
드라이브를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추바이스에게 떨어진 또하나의 중요한 임무는 앞으로 5개월동안 러시아
전역에서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친옐친 인물을 가능한한 많이 당선시키는
일이다.

막강한 경제력을 쥐고 흔드는 지방정치지도자들이 중앙정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기때문이다.

이들은 또한 상원 연방회의를 구성한다.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가 전열을 재정비,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겨냥하고 있어 추바이스로서는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체첸반군과의 휴전을 끌어냄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레베드도
빼놓을 수 없는 "옐친패밀리"의 일원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전형적인 군인에서 정치가로 변신한 레베드는 20여개월
동안 끌어온 체첸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기틀을 마련, 크렘린내에서
그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결국 각자 위치에서 견제와 경쟁을 통해 옐친에게 충성을 맹세한
체르노미르딘-추바이스-레베드의 이 삼각구도는 건강이상으로 생긴 옐친의
권력공백 메우기에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 정리=김수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