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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루몽] (490) 제11부 벌은 벌을, 꽃은 꽃을 따르고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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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릉은 자기가 평소에 좋아 하여 수시로 암송하기도 했던 육유의
    시가 천박한 시라는 말을 듣고 놀랍고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대옥이 왕유나 이태백 같은 대가들의 시를 좋아한 나머지 그보다
    좀 못한 육유 같은 시인들은 마음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왜 이 시가 천박한지 지금 말해줄 수 없어요?"

    대옥은 훌륭한 시인들의 시를 많이 읽다 보면 육유의 시가 왜 천박한지
    알 수 있다고 했지만 향릉으로서는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럼 말해주지. 육유의 시는 얼핏 보기에는 고매한 선비의 방을
    묘사한 것 같지만 사실은 여자의 방, 그것도 오랫동안 청상과부로
    살고 있는 여자의 방을 묘사하고 있지.

    그런데 그 착상이 음탕하다는 데 문제가 있지..."

    겹겹이 쳐진 문발 걷히지 않아"라는 문구의 뜻이 무엇이겠어?

    청상과부로서 외부 출입을 삼가고 정절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

    그래서 향기가 오래 서려 있다고 했는데, 이것도 얼핏 보면 정절을
    지키는 여자의 고상한 덕을 기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런 여자를 범하고
    싶은 욕망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지.

    옛 벼루가 옴폭 패어 먹물이 가득 고여 있다는 다음 구절은 그야말로
    욕정의 갈망으로 가득차 있는 청상과부의 은밀한 신체 부위를 묘사하고
    있는 거지"

    듣고 보니 그 시만큼 음탕한 시도 따로 없을 것 같았다.

    그것도 모르고 시의 겉만 보고 좋아 했던 향릉은 자신이 부끄럽기만
    했다.

    어찌 해서든지 빨리 좋은 시를 많이 읽고 배워 시를 보는 안목을
    키워나가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우선 향릉은 당나라 시인 왕유의 시 전집인 "왕마힐전집"에 실려 있는
    오언율시를 백 수쯤 읽고 암송하여 머리속에 넣어봐.

    그 다음에 두보의 칠언율시를 일이 백 수를 읽고 암송을 해봐.

    그리고 이태백의 칠언절구를 일이 백 수 암송하고.

    그 세 시인들의 시 수백 수를 머리에 넣고 보면 그제야 시를 보는
    안목이 열리게 되지.

    그러고 나서 도연명, 응창, 그외 위진남북조 시대의 시인들, 그러니까
    유정, 사령운, 완적, 유신, 포조 같은 시인들의 시를 섭렵하면 되는 거지.

    일년 정도 이렇게 애를 쓰면 향릉은 워낙 총명하니까 좋은 시를 쓰고도
    남을 거야.

    시옹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지"

    향릉으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시인들의 이름까지 꿰고 있는 대옥이 새삼
    위대하게 보이면서 언제쯤이면 저만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 부러워
    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일년만 노력하면 시옹도 될 수 있다니.

    아무래도 대옥이 향릉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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