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와 사가 혼을 담은 기업"

강원도 원주시 문막공단에 자리잡고 있는 악기제조업체 심로악기는
중소기업이면서도 노사가 힘을 합쳐 세계 유수의 악기업체로 성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심로악기는 제품명칭 부터 독특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지난 78년 동해종합통상이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한 심재엽사장은
사세확장과 함께 89년 악기제조공장을 직접 차려 생산업체로 탈바꿈시켰다.

이때 제품명을 어떻게 할것인가가 문제로 떠올랐다.

내수는 물론 수출까지 주력으로 하고 있는 만큼 브랜드결정이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러던중 고민하고 있던 심사장의 머리에서 한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경영자와 근로자가 인적 자원의 중심이라는,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사실에서 브랜드 결정의 모티브가 마련된 것이다.

심사장은 결국 자신의 성인 "심"과 노동자의 첫글자인 "로"를 따서
심로악기를 만들어 냈다.

악기무역상에서 제조업체로 전환한 심로악기는 유럽과 일본이 장악하고
있는 세계시장의 틈을 비집고 착실하게 성장, 수출을 포함해 연간
1백8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여기에는 심사장의 끈질긴 기술개발 노력과 화합정신에 바탕을
둔 근로자들의 헌신적인 동참이 크게 작용했다.

심사장은 "가정적인 분위기 아래 마음을 터놓은 대화가 고충해결과
회사발전을 동시에 이룬 비결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추구했던
경영방식의 일단을 밝힌다.

서울사무소와 문막공장을 부지런히 오가는 심사장의 방은 여느
사무실과는 달리 사장실 명패대신 고충상담실로 적혀있다.

각부서의 책임자로 부터 수렴되는 의견 청취도 중요하지만 사원들의
개별적 문제를 사장이 직접 들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근로자들은 아무런 부담없이 인근업체와의 임금격차 부터 가정문제까지
심사장과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대화의 관행은 임금협상 과정에도 이어져 지금까지 무분규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심로악기의 임금협상은 봄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타회사들과는
달리 연말에 결정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협상방식도 독특하다.

생산부서를 포함한 각과의 책임자들이 근로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단일안을 만들면 사장이 생각하고 있는 안과 절충한다.

보통 며칠만에 이작업은 마무리되고 현장의 사기는 더욱 높아지는게
통례다.

물론 회사의 순이익, 생산계획 등 모든 자료는 근로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공개된다.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처럼 물흐르듯이 진행되다 보니 생산성향상
등을 위한 노사의 노력도 협력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심로악기는 노사공동의 품질관리팀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

각부서 책임자와 연계된 품질관리팀은 일일생산량과 품질조사를
지속적으로 전개, 공정개선의 필요성이나 작업방식의 변경 등을 찾아낸 후
해당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이와 반대로 근로자들이 먼저 개선제안을 하는 제안제도도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생산물량이 급증하면서 잔업량도 늘어나고 있지만 근로자들은 자발적인
참여로 이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정시 퇴근시간인 오후 6시30분이 되면 현장 근로자들이 작업의 진행상황을
보아가며 잔업여부를 스스로 결정한다.

이기호 근로자대표는"기술력은 접어두고라도 사장과 종업원간의
막힘없는 의사소통과 상호신뢰가 심로악기의 경쟁력"이라고 잘라 말한다.

심로악기는 이처럼 생산차질을 극소화하는 전략을 바탕으로 중저가
악기시장에서 30%의 국제시장 점유율 보이고 있다.

심사장은 "창업당시 농사일을 하던 사람들을 사원으로 채용해 회사를
꾸려갈 만큼 어려운 여건이었으나 가족경영 화합경영만이 세계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판단아래 한길로 매진한 것이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고 밝힌다.

< 원주 = 김희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