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는 자들은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이 있어서
그런다는데 당신은 무슨 한을 풀지 못해 이렇게 밤마다 이승으로
들락거리는거요?"

보옥이 귀신과는 처음 대화를 해보는 셈이어서 심호흡을 해가며 말을
이었다.

"이 뜰에서 말씀드릴 수는 없고 방으로 들지요"

언홍은 보옥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자기가 앞장 서서 보옥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이 닫혀 있는데도 쑤욱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귀신은 어떤 물체나
마음만 먹으면 통과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할수없이 보옥도 언홍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보옥이 방문을 열고 발을 안으로 들여놓다가 그만 기겁을 하고 멈춰
서고 말았다.

조금 전 뜰에서는 언홍이 평소에 입고 있던 옷차림이었는데, 언제
그 옷이 달아나버렸는지 이제는 완전히 알몸인 상태로 서 있었다.

"속히 들어오셔서 나를 안아주세요.

날이 밝으면 난 떠나야 하는 몸이니까요.

옥황상제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승에 다시 내려가서 남자의
몸을 삼백 번 받아들이면 나의 한이 풀려 저승에서 편하게 거할 거라고
하셨어요.

그것도 이 남자 저 남자가 아니라 한 남자만을 상대해야 하는데,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도련님 같은 총각이 좋다고 하였어요"

난 숫총각이 아닌데.

보옥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삼백 번이면 어떻게 그 수를 채워야
한단 말인가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하룻밤에 열 번이면 한 달 가량 걸릴 것이고.

꿈이나 환상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직접 귀신과 교접하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보옥은 잔뜩 호기심이 생겨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먼저 교접으로
들어갔다.

보옥은 여자의 옷깃만 스쳐도 그게 꿈틀꿈틀 일어서는 체질인지라
교접에는아무 어려움이 없었으나 귀신의 몸속으로 들어간 느낌은
기이하기만 하였다.

뭐랄까, 두 뼘도 채 안 되는 음경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져서 언홍이
빠져 죽은 깊은 우물 속 같은 데로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음경이 삽입되자마자 그대로 무섭게 파정을 해버리는게 아닌가.

그런 교접이 하룻밤에 열 번 정도 있었으니 보름쯤 지나자 보옥은
피골이 상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집안 사람들이 보옥이 마르는 이유를 알게 되고 축사에 능통한
도인들과 중들을 불러 언홍의 귀신을 황천길로 편히 보내는 굿을 한 끝에
다행히 보옥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언홍의 귀신이 보옥의 몸에서 나갈 때 보옥은 그만 뒤로 벌렁 자빠져
기절을 하였고, 공중에서 여자의 교성이 엄청나게 크게 들려왔다.

"아흐, 아흐, 아아아아"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