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의 일관제철소건설 허용여부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 박재윤 상공장관은 "제철업 신규참여를 못하게한 법적
근거는 없으나 투자규모가 크고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정부와
민간이 협의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박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현대그룹에서 빠르면 이달중으로 제철소건설
계획안을 정부에 낼 것으로 알려지고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특히
관심을 끈다.

현대그룹 제철업 참여 허용방침을 시사하는 것이란 풀이가 있는가 하면
종래의 불허방침을 보다 완곡하게 표현한 것일 뿐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과연 박장관의 진의가 무엇인지는 좀더 두고봐야 알일이나 우리는
이 문제가 되풀이 쟁점화하는 것 자체가 매우 비논리적이라고 본다.

"법규정에 따른 행정"이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제철업 신규참여를 제한할
법률적인 근거도 없는데 통산부가 된다 안된다고 나섰던 것이 우선
잘못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등 전문연구기관에서도 일관제철소 부문에서 경쟁
체제가 도입되도록 민간참여를 허용하는것이 국민경제적인 측면에서 바람직
하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KDI는 경제개발에 따라 중국등 동남아지역에서 철강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새로운 일관제철소건설이 공급과잉을 가져올
것이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투자규모가 크고 파급효과가 대단하다"는 이유만으로 통산부가 신규진입을
허용하지 말지 따져야할 당위성은 없다.

투자는 그 규모나 업종에 관계없이 당사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사업성에 문제가 있다면 관련은행이 돈을 대주지 않을수는 있을지 모르나
정부가 규모를 따져 하라 마라 해야할 성질은 아니다.

그 사업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 책임은 전적으로 당해 사업자가 져야할
문제다.

우리가 현대그룹 제철사업 허용여부에 특히 관심을 갖는것은 이 문제가
특정그룹의 이해관계에 그치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업정책적인 측면에서 정부가 해야할 일이 무엇이고 할수없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번 기회에 분명히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법률적인 근거가 없는 사항에 대해서는 정부가 그 나름의 시각에서
충고를 할수는 있을지라도 이를 강제해서는 안된다.

원칙적으로 자율화해 놓고도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식의 행정편의주의적 단서조항을 조자룡 헌창쓰듯
휘두르는 것도 없어져야 할 시대상황인데, 법률에도 없는 자의적인
행정규제가 될 법이나 한 말인가.

석탄을 대량소비하는 제철업의 특성을 감안, 엄격한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등 법에 바탕을 둔 절차를 거치게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신규참여
그 자체를 통산부장관 또는 그 자문기관인 공업발전심의회에서 결정할수
있다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문민정부들어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돼온 규제완화가 왜 말에만 그치고
있는지 생가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