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시장의 중산층을 잡아라"

신흥국가에 진출한 미 다국적기업들의 해외전략이 바뀌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다른 나라로 수출하기 위한 제조기지정도로만 여기던
신흥개발도상국가에 대한 인식이 이제는 확실한 소비자층을 확보하기 위한
토대로 인식되고 있는 것.

경제성장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현지국가에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층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에 진출한 시티코프계열 시티은행은 이제 이 나라 신용카드시장의
40%를 점유하게 됐고 면도기회사로 잘알려진 질레트사는 폴란드에서 최근
낡은 면도날공장 하나를 인수,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 안간힘을 쏟고 있다.

모토로라는 10년전부터 싱가포르에서 무선호출기사업을 시작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인도시장에서 호출기 제조및 판매사업에 바로 뛰어들수
있었다.

중국도 미 다국적기업이 활발히 진출하는 지역으로 예외가 아니다.

안호이저 부시사는 1년전 중국최대의 양조회사를 매입,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버드와이저상표로 술을 팔고 있으며 프리토레이는 지난해
중국의 한 성에서만 1억상자의 치토스를 판매했다.

신흥시장에서 장사가 잘되자 이 지역에 대한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도
최고수준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외국인들이 공장건설이나 서비스영업등에 직접
투자한 돈은 94년보다 46% 증가한 3,250억달러였다.

이중 미국 기업들이 쏟아부은 돈은 950억달러로 어느 나라보다 많았다.

이 액수는 5년전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해외직접투자에서 차지하는 미국기업들의 이같은 압도적 우위는 사실
놀라운 변화다.

90년까지만 해도 민간부문에서 세계최대 해외투자국은 일본이었고
미국기업들은 독일이나 영국을 간신히 앞섰을뿐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투자는 주로 아시아지역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개도국으로 몰린 해외직접투자중 80%가량이 12개국에
집중됐는데 이들 투자수혜국 대부분이 아시아에 있는 나라들이었다.

이들 지역에 진출한 미 다국적기업들은 종업원뿐만아니라 경영진까지
현지에서 채용하면서 현지인들의 다국적기업을 대하는 인식을 바꾸어나가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미 다국적기업들은 이렇게 채용한 현지인들의 근무환경도 신흥국이 아닌
미국수준으로 차원을 높이고 있다.

이렇게 되자 현지인들도 이제 미국기업들이 자신들에게 권한을 기꺼이
이양해주고 있을뿐 아니라 노동자들을 훈련시키는데도 열심이라고 굳게
믿을 정도가 됐다.

미얀마의 군사독재를 지원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유노칼사등 일부
실패사례를 제외하면 미 다국적기업들의 이같은 변신노력은 대부분
현지인들의 큰 호응을 받으면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이창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