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이 창제한 잠수함이니 철갑선이니 하는
허무맹랑한 설이 사실인 것처럼 국민들에게 인식되기도 했다.

지금은 거북선이 잠수함이나 철갑선이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아직 거북선은 신화처럼 신비에 싸여 있는 구석이 하나 둘이
아니다.

거북선의 정확한 형태나 크기도 모른다.

임진왜란때 어디서 거북선을 만들었고 몇척이나 있었는지도 불분명하다.

거북선에 관한 유일한 사료는 1795년 간행된 "이충무공전서"에 실려있는
"구선도" 2개와 그에 대한 단편적 설명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임진왜란 200년 뒤인 정조대에 그려진 엉성한 그림이고
소략한 설명에 불과하다.

어쨌든 상상보다는 조금 실망스럽기는 해도 이 두개의 그림이 가장
오래 되고 권위 있고 믿을 만한 거북선의 모습인 것은 틀림없다.

"침몰된 거북선은 없다"는 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 90년
노태우 대통령의 특명에 따라 해군이 "이충무공 해전유물조사단"을
만들어 바다 밑을 뒤지기 시작한 것도 핵심은 거북선의 잔해라도 건져내
실상을 확인하려는 과욕 때문이었다.

이 조사단이 92년8월 한산도의 문어포 해저에서 발견해 국보 제274호로
지정된 "구함별황자총통"이 골동상에서 사다가 바다에 넣은 가짜였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단순히 장군 진급에 눈이 어두웠던 조사단장의 가증스런 속임수였던
것으로 돌려버린다면 별로 문제될 것은 없겠지만 진위조차 가리지 못한채
냉큼 사흘만에 국보로 지정해버린 문화재위원회의 처사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임진왜란때 거북선에서 주로 사용한 총통은 지금 남아있는 것이 많다.

육사박물관에도 1555~1589년에 제작된 천, 지, 현, 황포가 버젓이
전시돼 있다.

현지 감정에 참가했던 한사람의 전문위원은 육사박물관장을 지낸
내로라 하는 고무기 전문가였다.

이들의 감정결과를 받아들여 만장일치로 국보로 지정할 당시의
문화재위원은 미술사학자 5명, 금석학자 서지학자가 각각 1명씩 7명으로
전혀 그 방면의 문외한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짜 국보가 발견된 92년은 임진왜란 400주년이 되던 해였다.

이 해에 맞춰 무엇인가 공을 세워 권력자의 눈에 띄고자 했던 몇몇
군인의 허위조작에 문화재위원회가 말려든 꼴이니, 실추된 권위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지 묻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