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에서 왕질이라는 사람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바둑을 두고
있는 신선들을 만났다.

그는 신선들이 주는 음식을 얻어 먹고 배가 고픈줄 모른채 한판의 대국을
구경하다가 돌아와 보니 그동안 세월이 얼마나 흘렀던지 옆에 놓아 두었던
도끼자루가 다 썩어 있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바둑을 흔히 "신선놀음"이라 했다.

이는 신선의 경지에 들어선 사람만이 바둑의 오묘한 철리를 터득하여
몰아의 경지에 빠져들수 있다는 말과 상통한다.

한판에 우주의 질서가 담겨져 있고 자연과 인간세계의 흥망성쇠와 희로
애락이 표현되어 있는게 바둑이고 보면 속세를 초월한 "신선놀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300여년전 중국에서는 바둑에 단위제도가 생겨나 특히 프로바둑은
대결과 승부의 세계로 변모했다.

그 제도가 한국에 도입된 것은 광복후의 일이다.

물론 이 제도에도 "신선놀음"의 맥은 이어졌다.

프로기사가 최고위인 9단이 될 때에는 신선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뜻의
입신이라는 호칭이 주어진다.

그동안 한국에도 10명의 9단프로기사가 탄생되어 있었다.

이번에 입신한 이창호 유창혁을 합친다면 모두 12명이 되었다.

일본의 97명에는 훨씬 못미치지 바둑의 발상지인 중국의 12명과는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

특히 이번에 이창호는 지난 86년7월 입단 이후 9년11개월이라는 세계
최단기간에 입신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일본 이시다 요시오의 11년이라는 기록을 깬 것이다.

이 9단의 바둑 인생은 남다르게 뛰어남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때인 8세때에 당시 한국바둑계의 제1인자인 조훈현 9단
으로부터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 불과 1년반만에 아마 4단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대만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바둑대히 한국대표로 출전했다.

86년 11세인 초등학교 5학년때에 입단한 뒤 해마다 승단을 거듭하여
드디어 입신의 영광을 안았다.

그동안 90년 15세때에는 최고위전에서 스승 조9단을, 92년 17세때에는
동양증권배에서 임해봉9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국내 타이틀을 거의
석권했다.

이제 이9단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자가 된것이다.

일찌기 신라 헌강왕때 당에 건너가 바둑으로 이름을 떨친 박구를 찬양한
중국의 유명한 시인 장교의 전별시의 "바다 건너 저 나라에 그대 적수 뉘
있으리"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창호이 입신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