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조급증 문화 .. 황학수 <삼성카드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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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은 먼 길을 가더라도 조급히 서두르지 않았다.
자동차도 기차도 없는 시대였지만 한양 천리를 마치 천하를 주유하듯
느긋이 올라갔다.
이처럼 느긋한 민족성이 역사 발전을 늦추는 정체성으로 나타났다고 비판
하는 견해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국토가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였음
에도 독립 자존의 주체를 지킬 수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처럼 여유가 있던 민족의 품성이 언제부터 조급하게 바뀌었을까.
아마 이땅에 서구 문명이 들어온 근세 이후부터라고 생각되는데 좀더
단적으로 말하면 광복이후의 근대화 과정에서 생긴 사회적 병리현상일 듯
하다.
즉 우리를 오랫동안 짓눌러온 절대적 빈곤을 벗어나려면 몸과 마음을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생겼고, 전통적인 예양의 정신보다 물질에 대한
욕망이 앞서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능 위주의 속도를 강요하는 "빨리빨리" 문화는 공무의 처리에서는
뇌물.급행료 따위로 부정의 원인이 됐고 건설공사에서는 공기의 단축만을
자랑하는 부실공사를 탄생시켰다.
지난 몇년 사이에 일어났던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사건과 같은 대형
사고들은 모두가 이런 조급증 현상이 가져온 참사이다.
또 이런 조급증 문화는 교통행정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승용차는 다니지 못하도록 금지된 비상용 갓길을 질주하는 고속도로상의
위법은 말할것도 없고, 밤늦은 시간에 시속 2백km로 달리는 총알택시의
횡포는 목숨을 내놓고 법을 어기는 교통질서 파괴의 주범이다.
이러한 사회적 병리를 막으려면 공권력의 확립과 준법정신의 함양, 지나친
이기주의의 자제 등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치유 방안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의 일을 내 일같이 생각하고 예의를 지키며 사양하는 예양의
정신을 사회 전반에 펴서 넓히는 일이다.
만약 대형사고로 죽거나 다친 사람이 자기의 가족이나 친척이라고 생각해
보라.
어떻게 부실공사를 할 수 있고 차를 함부로 몰 수 있겠는가.
비록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부터라도 이윤 추구에만 혈안이 된
조급증 현상을 지양하고 예절과 문화가 살아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곧 세계화요,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5일자).
자동차도 기차도 없는 시대였지만 한양 천리를 마치 천하를 주유하듯
느긋이 올라갔다.
이처럼 느긋한 민족성이 역사 발전을 늦추는 정체성으로 나타났다고 비판
하는 견해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국토가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였음
에도 독립 자존의 주체를 지킬 수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처럼 여유가 있던 민족의 품성이 언제부터 조급하게 바뀌었을까.
아마 이땅에 서구 문명이 들어온 근세 이후부터라고 생각되는데 좀더
단적으로 말하면 광복이후의 근대화 과정에서 생긴 사회적 병리현상일 듯
하다.
즉 우리를 오랫동안 짓눌러온 절대적 빈곤을 벗어나려면 몸과 마음을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생겼고, 전통적인 예양의 정신보다 물질에 대한
욕망이 앞서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능 위주의 속도를 강요하는 "빨리빨리" 문화는 공무의 처리에서는
뇌물.급행료 따위로 부정의 원인이 됐고 건설공사에서는 공기의 단축만을
자랑하는 부실공사를 탄생시켰다.
지난 몇년 사이에 일어났던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사건과 같은 대형
사고들은 모두가 이런 조급증 현상이 가져온 참사이다.
또 이런 조급증 문화는 교통행정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승용차는 다니지 못하도록 금지된 비상용 갓길을 질주하는 고속도로상의
위법은 말할것도 없고, 밤늦은 시간에 시속 2백km로 달리는 총알택시의
횡포는 목숨을 내놓고 법을 어기는 교통질서 파괴의 주범이다.
이러한 사회적 병리를 막으려면 공권력의 확립과 준법정신의 함양, 지나친
이기주의의 자제 등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치유 방안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의 일을 내 일같이 생각하고 예의를 지키며 사양하는 예양의
정신을 사회 전반에 펴서 넓히는 일이다.
만약 대형사고로 죽거나 다친 사람이 자기의 가족이나 친척이라고 생각해
보라.
어떻게 부실공사를 할 수 있고 차를 함부로 몰 수 있겠는가.
비록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부터라도 이윤 추구에만 혈안이 된
조급증 현상을 지양하고 예절과 문화가 살아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곧 세계화요,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