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킨 피스"는 상처받은 한 청년의 내면을 통해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다.

벨기에 감독 프랭크 반 파셀의 데뷔작.

스토리보다 이미지가 강조돼 낯선 느낌을 주지만 사유의 깊이와
예술적 감성이 잘 조화돼 있다.

이 영화의 묘미는 환희와 슬픔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킨 영상미학.

카메라는 온 가족이 자동차로 숲길을 달리는 첫장면에서 싱그러운
"빛의 세계"로 들어갔다가 곧이어 불안정한 도시의 소음속을 헤맨다.

이같은 명암의 대비는 주인공의 의식을 시각적으로 치환하는 장치이자
주제를 떠받치는 지렛대로 작용한다.

블루톤에 자연광을 이용한 미명과 한낮의 햇살, 비내리는 풍경등을
적절하게 가미한 것도 인상적.

얘기는 어린 시절 드라이브 도중 철길 건널목에서 오줌누러 내렸다
열차가 덮치는 바람에 가족을 잃은 청년 해리가 여전차운전사 잔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우연히 잔의 위층에 방을 얻은 해리는 구김살 없는 그녀에게 점차
끌리지만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아 애를 먹는다.

그는 바닷가에서 황금빛 구두를 선물하고도 오히려 심신이 "마비"되는
등 어긋나기만 하는 사랑에 고통스러워 한다.

윗층 남자와 아랫층 여자의 잠못 이루는 밤이 거듭되면서 영화는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사랑의 "속도"를 조절하는 문제다.

상처받은 사랑은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위태롭다.

잔은 해리의 숨은 열정을 끌어내려 매일밤 댄스홀에서 다른 남자와
춤을 추다 기진해 쓰러진다.

괴로워하던 해리는 잔에게 자동차를 선물하려다 면박을 받고 비극의
현장인 건널목으로 달린다.

마지막 반전.

그가 죽음의 유혹을 이기고 돌아왔을때 불행히도 잔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안고 다시 혼자된 그에게 "별은 사라지기 직전
가장 빛난다"는 잠언이 들려온다.

( 1일 명보 이화예술 반포시네마 개봉 예정 )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