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현대전자(대표이사 정몽헌회장) 임직원들의 월급봉투를 보면
끝 세자리가 거의 0으로 찍혀 나온다.

1천원 미만의 잔액이 전혀 없다는 것.

이는 계산을 편하게 하기위해 푼돈을 없애 버린게 아니다.

일명 "끝돈 기부운동"으로 자그마한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노사간의
담합(?)때문이다.

그러나 강제적인 것은 아니고 자발적이다.

끝돈 기부운동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3월 본사주최로 열린 노사화합
캠페인을 마치면서부터.

당시 현대전자는 "노사불이" 신문화 추진 결의대회를 성황리에 마친뒤
이 대회가 일시적인 행사로 그치지 않도록 노.사 각 5명씩으로" 노사불이
신문화 추진협의회"를 구성, 각종 사업을 기획 추진했다.

끝돈 기부운동도 이과정에서 태생한 것.

현재 서울사무소, 이천본사, 청주공장, 호법공장등 2만여명에 달하는
현대전자임직원들의 75%가 이 끝돈 기부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최고 기부액수는 9백99원이며 최저 기부액수는 2원으로 한달에
모두 7백만원 가량이모아진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우수리에 불과한 몇백원이나 몇십원이 2만명의
임직원을 통해 한마음으로 모아지기 시작하면서 끝돈은 몇백만원이상의
큰 기부금으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끝돈은 각 절반씩 어려운 직원들과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쓰여지며
부족한액수는 회사에서도 적극 지원을 해주고 있다.

지난 3월11일 상피육종과 백혈병으로 투병중인 이천공장 반도체조립팀
소속 김병록 사우(21)에게 끝돈 기부로 모은 2천만원이 전달됐다.

그러나 이 돈은 김사우에게 현대전자 전사원들의 사랑이 담긴 마지막
선물이 되고 말았다.

김사우는 돈이 전달된 직후 병이 급속도로 악화돼 9일만에 세상을떠난
것.

4월2일에는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신장을 이식한
이천본사 생산기술 연구소 김홍일 사우(26)에게 5백만원의 격려금이
전달됐다.

김씨는 이일로 지난 1일 근로자의 날에 효행상을 받기도 했다.

또 4월23일 강원도 고성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전가옥이 전소되고
소 판돈 3백50만원을 고스란히 불속에 날려버린 서울사무소 재정부
소속 윤봉선사우(26)에게 5백만원이 전달됐다.

이외에 현대전자는 지난해 10월부터 이천.여주지역의 무의탁 장애인
시설인 양무리의 집, 작은 평화의 집, 옐림원과 노인복지시설인 베로니카의
집, 노인복지회관등 5군데와 자매결연을 맺어 매월 50만원씩을 지원하며
자원봉사를 해주고 있다.

지난 16일 청주공장은 고물을 팔아 17명의 지체장애아들을 돌보고
있는 떠꺼머리 총각 아빠 김정용씨(33)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청주공장은 김씨의 "사랑의 집"에 매달 40만원씩을 지원해주기로 하고
현대전자에서 나온 고물도 김씨에게 전해주기로 했으며 부족한 일손을
돕기위해 여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자원봉사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자원봉사에 나선 나윤덕씨(25.청주공장 기숙사 자치회장)은 "사랑의
집이 너무 외진 곳에 있다보니 사람들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아요.

우리의 자그마한 마음이 큰 보탬이 된다면 사원들에게 보람된 일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 사업추진에 몸이 열개라도 부족한 전병원관리과장은 "기부금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원이나 고아원.양로원.소년소녀과장.독거노인등에게
쓰이면서 노사간에 새로운 공감대에 형성되고 있다"며 "이웃사랑 실천은
노사협력의 신문화를 세우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청주 = 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