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 (주)선경 플랜트본부 대리 >

대학 졸업후 지금까지 6년째 중국관련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비록 짧지만 이런 나의 이력에 비추어 보아 중국과 화교에 대해 꿰뚫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들을 알지 못한다.

내가 그들에 대해 알고 있다면 극히 일부분이고 표면적인 것일 뿐이다.

내가 보아 왔던 한국의 화교는 한국인 가운데로 완전히 용해되지 못하면서도
또 온전한 중국인 같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중국어보다 한국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겉으로 드러난 습관과 행동양식도
한국인을 더 많이 닮아 있었다.

나는 "혹시 저들은 한국인이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내 눈에는 그들이 매사를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급한 것도 없고
특별한 욕망도 없는 것처럼 비쳐졌다.

그저 하루하루를 때우며 지내듯 무계획하게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 내가 그들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은 대만에 공부하러 가서
였다.

거기서 그들은 대부분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한국 일본 대만을
오가며 자신들이 가진 이점을 최대한으로 살려 새로운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무도 흉내낼수 없으면서도 확실한 돈벌이를 그들은 나름대로 개척해
놓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곳에서의 화교는 가장 중국인다우면서도 이국적인 매력을
대만인들에게 향수처럼 뿌리고 있는 존재였다.

만만적(만만디)라는 말처럼 느긋하면서도 조금도 손해보지 않는 치밀한
계산, 누구와도 원수삼지 않는 대인관계, 자신이 품고 있는 욕심보다 꼭
한걸음씩 물러설줄 아는 자제력.

난 그런 면에서 거대한 공룡 중국의 잠재력을 조금씩 체험하기 시작했다.

화교들은 아무하고나 친해지지는 않는다.

인간의 속성이 다 그렇겠지만 그들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이해득실면을
아주 확실하게 따지고 든다.

그 기준은 자신들이 정한다.

처음에 보기엔 별 근거 없이 보여도 그들 나름대로 확실한 계산도 있고
판단도 가미된다.

일단 서로 가까워지면 관계가 친가족과도 같이 발전되고 또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지속되길 원한다.

물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서 말이다.

몇년전 명동에 위치한 대만대사관에 중국 오성기가 게양되었을때 그것을
본 많은 대만 출신 화교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분노하고 애통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그들을 바라볼때 그들은 중국 본토를 내집같이 드나들며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결코 감정에 치우쳐 돈벌이를 놓치는 일이 없다.

생존의 법칙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나 할까.

전세계에 화교가 없는 곳은 거의 없다.

그런 수적인 팽창과 함께 의식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중화사상으로 인해
그들은 거주지에 관계없이 모두 중국인일 수 밖에 없으므로 그들이 중국의
뒤늦은 용틀임에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중국이 깨어났고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그 기세는
아무도 예측할수 없을 만큼 밀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