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 명지전문대 교수/경영학 >

노사관계 개혁 보도를 계기로 복수노조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허와 실을 따져 본다.

복수노조를 주장하는 일반적 논거 속에서 ILO압력이나 OECD가입을 내세워
한국 노사관계의 후진성을 부각시키고 선진국 노사관계를 따라가야 한다는
당위론이 깔려있다.

개화기 일본 사람은 남방산 수입 차기를 즐겼다고 한다.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차도의식에 오른 수입 그릇은 필리핀의 루손섬
사람들이 변소에서 휴지 대용으로 사용한 손가락을 씻기 위하여 변소 앞에
물을 담아 두는 그릇이었다.

복수노조 주장을 들으면서 개화기 일본 사람이 변소용 물그릇을 진귀한
찻잔으로 이용한 사실이 연상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복수노조의 원산지 영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신생기업의 전일노조 협약과
기존 복수노조 기업의 단일 테이블 교섭이 늘어나고 있다.

산업별 조직의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산업차원의 횡단적 교섭에서 기업별
교섭으로 전환하는 추세에 있다.

이것은 선진국들이 복수노조의 전통에서 한국형 기업별 단일조직의 특성에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선진국의 복수노조는 내부에서 변질되고
있는데 한국의 노동계 일각에서는 복수노조를 동경하고 있다는 점이 개화기
일본사람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노동운동의 원산지 영국에서 복수노조가 바탕이 된 것은 산업혁명기
노동의 단결활동이 형사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임금수준을 지키기 위하여
직업별로 비밀결사를 조직한 것과 관계가 있다.

영국 노동계는 직업별로 비밀리에 단결하여 저항을 계속한 끝에 형사처벌
대상에서 면죄부를 받았냈기 때문에 정부를 압도할 만큼 힘이 비축되었을
때는 복수노조의 단점이 노출되고 있었다.

단일노조 협약이나 단일 테이블 교섭 등 80년대 이후의 행보 변화는
복수노조의 단점을 보완하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영국의 복수노조는 불행한 출생배경과 관계가 있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노동법의 안내를 받으며 태어났고 노동계는 애국하는
마음으로 공업화에 협력했으며 행정부의 관리밑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80년대말 이후 한국노동이 공업화에 협력한 몫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복수노조 주장이 대두한 것은 영국 노동계가 복수노조의 단점을 보완하기
시작하는 시점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시간적 대조를 이룬다.

첫째 영국에서는 사용자의 임금절하를 방어하기 위하여 직업별로 단결하는
과정에서 복수노조가 나왔으나 한국에서는 노조의 임금인상 전략에 대한
내부 불만이 복수노조를 부추기고 있다.

말하자면 영구의 복수노조가 방어수단 이었다면 한국의 복수노조 주장은
공격수단이라고 할수 있다.

둘째, 영국에서 사용자의 임금절하를 근로자 힘으로 막을수 없었기 때문에
동료 직업인끼리 뭉치는 과정에서 복수노조가 나왔으나 한국에서는 노조
내부의 이념 차이가 복수노조를 요구하고 있다.

말하자면 영국의 복수노조가 노동의 단결과정에서 나왔다면 한국의
복수노조 주장은 단결이 분열되는 과정에서 나오고 있다.

셋째, 영국에서는 사용자앞에서 무력한 개별 근로자가 공동으로 당면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협력하는 과정에서 복수노조가 나왔으나 한국에서는 노조
내부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합의에 도달할수 없기 때문에 복수노조
주장이 나오고 있다.

말하자면 영국의 복수노조는 개별노동의 협력과정에서 나왔고 한국의
복수노조 주장은 노조 내부 이견을 집단적으로 배격하는 과정에서 나오고
있다.

복수노조라는 표현은 하나지만 그 말이 함축하고있는 의미는 다르다.

이것은 노사관계가 공업화 단계에 따라 변하며 문화에 따라 모양을 달리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수노조 문제도 이런 시각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복수노조 주장의 당위성을 ILO 권고나 OECD 가입조건등에서 찾고 선진국에
따라가는 것이 노동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노동의 단결활동을 형사처벌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노동삼권을
법으로 보호하는 한국에 복수노조를 운위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한 걸음 나아가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는 것도 너무 순진한 것이다.

ILO의 우유부단을 블루 라운드가 대신하여 나오는 것은 노동계를 적극적
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후진국의 경쟁력을 효과적으로 약화 시키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OECD 회원국은 복수노조의 압력으로 노사분규 비용을 많이 부담하고 있는데
한국 기업이 분규비용을 적게 부담한다면 경쟁에서 불리함으로 한국도
복수노조를 허용하여 분규비용을 균등하게 부담하자는 것이다.

노동의 삼분오열로 경영의 추진력이 분산되면 이것이 경쟁력 약화로
연결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국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장기파업의 경험을 통하여 노동 3권이
보장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한국에서 복수노조 허용 여부는 당위성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ILO나 OECD와 같은 외부의 압력에 굴복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제 국민적
선택만 남았다.

여기에서 노사관계 입법경험이 필요하다.

한국의 노동은 수입된 법제밑에서 불행한 성장기를 보냈다.

길지는 않지만 80년대 이후 다양한 노사관계 경험을 축적 했음으로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에 적합한 틀을 다시 짜야한다.

공업화 단계와 문화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외국의 법제를 모방하는 일이
재현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