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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은 러시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10년째가 되는 날이다.

200여명의 사상자를 내 원전 사상 최대의 재난으로 기록된 이 사고는
원자력에 대한 불안감을 전세계적으로 확산시켰었다.

반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각국의 주의를 다시한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국경제신문사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체르노빌 사고 10년을
맞아 국내 원전의 안전성을 진단하고 향후 원전의 합리적 운영방안등을
논의하는 전문가 좌담회를 가졌다.

최진석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엔 강창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교수, 곽상경 고려대 경제학과교수, 박상기 한국전력공사기술
개발본부장, 신정식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이 참석했다.

좌담회 내용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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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이사장 =체르노빌 사고는 국민들에게 보이지 않는 핵 공포감을 불러
일으켜 국내에선 원전건설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부나 한전이 원전의 안전성에 신경을 좀더 쓰게하는 계기가
되는등 전화위복의 측면도 있었다.

우선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과 여기서 얻을 수 있었던 교훈들을 짚어보자.

<> 강교수 =세계 최대의 원전사고를 낸 체르노빌 원전은 크게 두가지
면에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먼저 사고가 났을때 원전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고유안전 제어능력이
없었다.

또 원자로가 격납용기에 싸여있지 않고 노출돼 있어 사고시 방사능 유출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었다.

이런 점에서 체르노빌 원전은 국내 원전에 비해 턱없이 허술한 상태였다.

국내 원전의 경우 사고시 자기대응 장치가 마련돼 있고 원자로는 두께
20cm의 철제용기와 1.2m의 콘크리트 격납용기에 이중으로 싸여 있어
체르노빌 원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 박본부장 =원전 운영상의 미숙도 체르노빌 사고의 주요 원인중 하나다.

인재였다는 얘기다.

특히 사고직후 수습관리 체계가 사회주의 국가 특성상 경직돼 있었던 게
피해를 크게 했다.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사고확대의 원인을 교훈삼아 우리는 비상사태시 관련 기관간 역할
분담을 재점검하고 운영 관리면에서 설비를 개선하는등 안전성 제고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 최이사장 =한국은 현재 11기의 원전을 갖고 있는 세계 10위권의
원전설비 보유국이다.

실제 국내원전의 안전성 수준은 어느정도 인가.

<> 박본부장 =한마디로 안전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원전의 고장은 정도에 따라 7등급으로 나뉜다.

이중 0등급이 가장 미미한 것으로 기계고장에 따라 원전가동이 중지되는
것이다.

방사능이 유출되는 사고는 1등급 이상이다.

그러데 한국에선 1등급 이상의 원전사고가 거의 없었다.

원전이용률도 높아 최근 3년간 87%선을 유지했다.

이는 세계 5위 수준이다.

<> 곽교수 =한전이 아무리 안전하다고 주장해도 국민들은 원자력발전소라고
하면 원자탄을 연상하게 마련이다.

체르노빌 사고이후 더욱 그렇다.

실제 교통수단중 확률상 가장 안전한 것은 비행기이지만 일반인들은 이를
제일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국민들의 피부에 보다 와닿게 원전의 안전성을 설명하고 홍보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 신원장 =원전의 안전성과 관련해선 전문가들의 판단과 일반 국민들의
인식 사이에 벌어진 간극을 메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

특히 원전 주변 주민들의 입장에서 이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은
정부와 한전이 책임져야 할 의무다.

<> 최이사장 =원전의 안전성 논란이 있긴 하지만 국제환경규제 강화
움직임은 원전의 활용을 불가피하게 하는 면도 있다.

사실 에너지 사용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해결은 난제중의 난제인데...

에너지와 환경문제에 대해 논의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 곽교수 =세계적으로 생산이 증대될 건 뻔한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게 바로 에너지다.

앞으론 생산이 가파르게 신장하면서 에너지 사용도 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데 문제는 에너지의 사용확대가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점이다.

특히 값이 싼 에너지일수록 환경을 오염시키는 정도가 심하다.

뒤집어 말해 오염을 줄이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얘기다.

게다가 환경오염은 한 나라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지구 전체의 문제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세계 각국이 공멸위기를 느낄 수 밖에 없는 게 환경오염이다.

각국은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달리 구체적인 행동과
책임비용을 요구하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신원장 =에너지 중에서도 석유 석탄등 화석연료의 사용이 가장
큰 문제다.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아황산가스나 이산화탄소(CO2)는 산성비와
지구온난화 문제를 야기시킨다.

특히 지구온난화와 관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는 앞으로 100년간 지구의 온도가 섭씨 0.8~3.5도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화석연료 사용규제등 별도의 조치가 없을 때를 가정한 것이긴 하나
지난 1만년이래 가장 빠른 지구온난화 속도란 점에서 주목된다.

이로 인해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각 대륙의 해수면이 50cm 올라가
적지 않은 도서나 해안이 바다에 잠길 전망이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해 오는 2000년까지
각국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지난 90년 수준으로 동결토록 촉구하고 있다.

OECD가입을 눈앞에 둔 한국으로선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게 됐다.

<> 최이사장 =그런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과
환경친화적 에너지로 기존의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 강교수 =대체에너지로는 우선 태양열이나 조력 풍력등을 이용하는
신재생에너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에너지는 활용에 한계가 많다.

안정적인 에너지원으로 충분히 공급되기가 어렵다.

더욱이 한국 여건에선 적절치도 않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따라서 에너지 값도 그만큼 비싸진다.

현재 30가구도 살지 않는 마라도에서 40kW짜리 태양광발전소를 돌리고
있는데 이 발전소 건설에 6억원이 투입됐다.

부지만도 600평이 들어갔다.

그 이전에 있던 15kW급 디젤발전소는 불과 2평만 차지 했었다.

한 연구결과는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아무리 늘리더라도 전체 에너지수요의
5%이상을 공급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신원장 =개인적으론 에너지 소비절약이야말로 "제3의 에너지 공급"이란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본다.

대체에너지원의 경우 무공해에 가까운 신재생에너지가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신재생에너지는 활용에 제약이 많다는 걸 인정한다.

그렇다면 남은 카드인 원자력이 차선의 고려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최이사장 =원자력 사용엔 긍정적인 면이 많은 반면 부정적인 측면도
지적될 수 있을텐데.

<> 강교수 =원자력은 무엇보다 경제적인 연료라는 게 장점이다.

비축효과가 크고 화석연료 사용때 생기는 이산화탄소가 없다는 것도
그렇다.

또 에너지원의 다변화란 측면에서도 원자력은 유용한 에너지원중의
하나다.

반면 체르노빌원전 처럼 사고가 한번 나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고
핵폐기물 처리가 쉽지 않다는 것등이 단점이다.

<> 곽교수 =원자력이 경제성 있는 대안이긴 하지만 일반 국민들의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특히 최근엔 원전 부지선정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고 있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원자력발전의 비용은 앞으로 계속 올라갈 것이다.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원전 주변 주민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려면
그만큼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선 이미 원전의 발전단가가 액화천연가스(LNG)의
발전단가보다 2배이상 높다는 게 반증이다.

따라서 원자력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할 게 아니라 그밖의 여러
대안들을 함께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 신원장 =한국은 현재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OECD 가입국중 이렇게 에너지수급 구조가 취약한 나라도 없다.

특히 에너지중 석유 의존도가 60%를 넘는데 이는 앞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대부분 중동국가의 석유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원자력은 준국산에너지로 볼 수 있다.

그만큼 안정적인 에너지원이란 얘기다.

하지만 원자력의 경우 국민들의 수용여부가 최대 관건이다.

이 문제는 어쨌든 경제논리로 해결해야 한다.

원전 예정부지 주민들의 반대를 무조건 님비(NIMBY) 현상으로 매도해서도
안된다.

원전이 들어가는 지역엔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고 이 비용은 전력요금
인상을 통해 사용자가 부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 한전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이 대화를 통해 경제적 보상의
틀을 마련하는게 긴요하다.

<> 박본부장 =앞으론 그런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주민들의 반대가 보상을 원하는 건지, 아니면
원천적으로 원전이 들어서는 걸 반대하는 것인지 확실치 않은 경우가 많다.

또 보상의 경우도 개인들을 대상으로 해달라는 것인지, 전체 지역차원의
보상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지역주민들과의 대화나 합의도출이 어려운 점도 있다.

지방자치제가 보다 뿌리를 내리면 이런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되리라
믿는다.

<> 최이사장 =원전건설을 둘러싼 주민들의 반대가 심한 것은 그동안
정부나 한전이 국민들에게 원전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데 소홀했기
때문이란 생각도 드는데.

<> 강교수 =사실이다.

원전에 관한 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이런 바탕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원전에 대한 정보를 솔직히 제공해야 할 필요성을
소홀히 한 결과다.

<> 곽교수 =원전건설 추진과 이에 대한 반대 논란은 어차피 우리가 치러야
할 홍역중의 하나다.

문제는 이런 진통을 어떻게 최소화 하느냐이다.

원전의 경우 정부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안전을 확실히 책임지기만
하면 된다.

주민보상등 나머지 문제는 사업시행자인 한전에 맡기는게 올바른 방향이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전력요금 규제등을 풀어 한전이 책임지고 경제논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정리=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