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수 < 대우경제연 연구위원 >

올해 한국 경제가 연착륙에 성공할수 있을지에 대해 전문가 사이에 전망이
엇갈리고 있으며 정부는 경기를 연착륙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어디를 찾아봐도 경기 연착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

이는 경기 연착륙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경기 연착륙을 평가할수 있는
과학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만약 올해 한국 경제가 7% 성장한다면 일부에서는 연착륙에
성공했다고 주장할 것이며, 다른 일부에서는 연착륙에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등 결론없는 논쟁이 재연될 소지가 많다.

따라서 객관적인 기준 없이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경기연착륙 여부를 논의
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대신 과거 한국경제가 기록했던 실적과의 비교를 통한 상대 평가가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때 과거의 실적과 비교하기 위해서는 역시 기준이 필요한데 어떤 기준이
타당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경기 연착륙을 언급할때 경기 정점부근에서 기록된 최고 경제
성장률과 경기저점 부근에서 기록된 최저 경제성장률을 비교하여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염두에 두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경우 최고값과 최저값의 단순한 비교는 그릇된 결론을 유도할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성장률이 12%에서 6%로 하락한 것과 8%에서 2%로 하락한
것은 6% 포인트씩 하락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두 경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이 때에는 최고 성장률과 최저 성장률 사이의 하락률, 즉 경기 하강의
정도를 비교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경기의 하강정도를 보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비교가 될수
없다.

예를 들어 경제성장률이 1년만에 30% 하락했다고 해서 경제성장률이 2년에
걸쳐 50% 하락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연착륙에 가깝다고 단정지을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경기하강의 속도라는 기준이다.

경기의 하강정도만 놓고 보았을 때눈 성장률의 30% 하락이 50% 하락보다
경기 연착륙에 가깝다고 할수 있지만 경제 주체는 연간 25% 하락할 때보다
연간 30% 하락할때 경기가 더 급랭했다고 느낀다.

경기하강의 정도와 속도 외에도 고려해야 할 기준이 하나 더 있다.

예를들어 한 경기순환의 정점에서 경제성장률이 최고 10%를 기록한 이후
어떤 강한 충격에 의해 일시적으로 한 분기에만 0%로 하락한 것을 제외하고
는 성장률이 7%로 유지된 경우와 최고 경제성장률 10%에 이어 경기 하강기
중에도 5~6%의 성장이 계속 유지된 경우를 생각할수 있다.

이 예는 우리가 경기 연착륙을 언급할때 최고 성장률과 최저 성장률의
비교를 통한 경기의 하강정도및 하강속도 외에 또 한가지 고려해야 할 기준
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경기상승기의 평균 성장률과 경기하강기의 평균 성장률을 비교하는
일이다.

흔히들 그동안 다섯 차례에 걸친 경기하강기 동안 한국경제가 연착륙에
성공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한다.

이상의 세가지 기준을 사용했을때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어쨌든 이들 세가지 기준을 모두 적용해 보면 84년 2월부터 85년 9월까지에
있었던 제3순환 하강기가 경기 연착륙에 가장 가까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이번 경기 하강기 동안에 한국 경제가 달성해야 할 최소한의
목표는 명백하다.

그것은 이번 제6순환 하강기 동안에 적어도 제3순환 하강기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하는 일이다.

그 결과가 경기 연착륙인지 아닌지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 단정지을수
없지만 이 목표가 달성될 경우 한국 경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연착륙에
가까웠다고 평가될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률이 5% 아래로 내려가는 분기가
한번도 없어야 하며 성장률을 6% 이상으로 계속 유지할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언뜻 보기에는 이 정도의 목표는 쉽게 달성될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기
쉽다.

그러나 경제는 미묘한 것이어서 한번 꺾인 경기는 쉽게 반전되지 않으며
경기하강기 동안에는 작은 충격이라도 경제에 예상 외로 큰 타격을 줄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올해 한국경제는 수출 둔화세가 비교적 완만한 덕택에 7%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비경제적인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한
이번 하강기는 과거 어느 하강기보다 연착륙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일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