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PCS에 도덕성이라니 .. 유화선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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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이 된 존 케네디가 자신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으로
기용하자 워싱턴 정가는 "그럴 수 있느냐"며 들끓었다.
그러나 케네디는 단호했다.
"대통령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공민권이 제한돼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 선정 문제가 재계의 핫이슈로 부상해
있다.
재계의 양대 라이벌인 현대와 삼성이 전격적으로 손을 잡는가 하면 대우는
"1부 리그"를 포기하고 "2부 리그"에서 실리를 모색하고 있다.
LG는 LG대로 칼날을 시퍼렇게 세우고 있다.
비제조군에 속해 있는 기업들도 극심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이럴때면 국민들은 으레 정부의 역할을 기대한다.
이권이 달려 있는,적어도 이권이 달려 있다고 판단되는 사업의 허가권을
따는 경쟁에선 정부만이 공공의 이익을 판가름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같은 믿음은 정부의 공정성에 대한 컨센서스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정부는 룰(기준.규칙)에 기초해 게임을 진행하는 심판에 곧잘
비유된다.
이때 심판의 공정함은 다름아닌 룰의 투명성과 객관성에서 찾아진다.
기준이 투명하고 객관적이어야만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납득할 수 있고 게임에 지더라도 흔쾌히 승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제시한 PCS 게임의 룰은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정통부의 심사기준에는 투명성과 객관성을 100% 충족시키지
못하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기업경영의 "도덕성"이란 항목이 바로 그것이다.
기업은 물론 도덕적이어야 한다.
불법적인, 예컨대 마약거래나 밀수 도박 등으로 이윤을 창출해서는 안된다.
사업의 허가권을 뇌물같은 것으로 사서는 더욱 안될 말이다.
"일부 기업들이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도덕적으로 결백하지 못했던
상황에서는 불가불 도덕성을 따져볼 수 밖에 없다"(정통부 고위관계자)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법"으로 따지고 다스려야 할 영역이다.
비자금 사건때처럼 하면 그걸로 족하다.
그래도 "도덕성"을 따져 묻겠다고 고집한다면 과연 도덕성의 실체가 무엇
이냐는 점부터 짚어보는게 순서다.
공맹지도를 도덕이라고 한다면 가장 도덕적인 기업은 공자나 맹자가 경영
하는 기업이다.
혹여 비자금사건이나 어느 기업의 환경파괴 사례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이는 더욱 난센스다.
실체가 없는 만큼 도덕성을 평가할 기준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도덕성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도덕성의 수준을 비교해야 하는데
무얼 갖고 도덕성을 평가하겠다는 말인가.
비자금액수나 환경파괴정도를 지수로 만들면 모를 일이지만.
이렇듯 도덕시험은 문제를 내기도 힘들고 채점을 하기도 어렵다.
시험성적이 좋은 학생이라고 해서 도덕적인 학생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도덕성을 기준으로 한다고 해서 정말로 도덕적인 기업이
선정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재계가 서로 상대방 흠집내기식의 "비도덕적"인 홍보.로비전에 나서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부의 기준에 투명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문제는 또 있다.
설사 도덕성의 실체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소비자, 나아가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정부가 특정사업권을 허가하는 기준으로 도덕성 운운하는 것은 다분히
희극적일수 밖에 없다.
아니 의도적일 수도 있다.
왜냐.
도덕성 조항에서 또 다른 규제 메커니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문에 자의적인 해석조항이 많은 국가일수록 정부의 규제정도는 높다"
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묻고 싶다.
PCS 사업자 선정기준으로 "도덕성" 항목을 추가한 것은 아직도 기업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정부의 "오만과 편견"의 산물이 아닌지를.
도덕성 기준을 고집하다 행여 특혜시비를 불러일으키는 자충수를 두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에 하는 말이다.
필리핀의 라몬 막사이사이는 대통령 재임시절 그의 아저씨인 암브로시오가
정부의 시멘트 구매입찰에 낙찰되자 이를 취소해 버렸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 계통에 종사했던 암브로시오는 낙찰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대통령을 상대로 2만5,000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
했다.
정부의 행정에 도덕성을 개재시키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과 함께.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5일자).
기용하자 워싱턴 정가는 "그럴 수 있느냐"며 들끓었다.
그러나 케네디는 단호했다.
"대통령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공민권이 제한돼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 선정 문제가 재계의 핫이슈로 부상해
있다.
재계의 양대 라이벌인 현대와 삼성이 전격적으로 손을 잡는가 하면 대우는
"1부 리그"를 포기하고 "2부 리그"에서 실리를 모색하고 있다.
LG는 LG대로 칼날을 시퍼렇게 세우고 있다.
비제조군에 속해 있는 기업들도 극심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이럴때면 국민들은 으레 정부의 역할을 기대한다.
이권이 달려 있는,적어도 이권이 달려 있다고 판단되는 사업의 허가권을
따는 경쟁에선 정부만이 공공의 이익을 판가름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같은 믿음은 정부의 공정성에 대한 컨센서스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정부는 룰(기준.규칙)에 기초해 게임을 진행하는 심판에 곧잘
비유된다.
이때 심판의 공정함은 다름아닌 룰의 투명성과 객관성에서 찾아진다.
기준이 투명하고 객관적이어야만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납득할 수 있고 게임에 지더라도 흔쾌히 승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제시한 PCS 게임의 룰은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정통부의 심사기준에는 투명성과 객관성을 100% 충족시키지
못하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기업경영의 "도덕성"이란 항목이 바로 그것이다.
기업은 물론 도덕적이어야 한다.
불법적인, 예컨대 마약거래나 밀수 도박 등으로 이윤을 창출해서는 안된다.
사업의 허가권을 뇌물같은 것으로 사서는 더욱 안될 말이다.
"일부 기업들이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도덕적으로 결백하지 못했던
상황에서는 불가불 도덕성을 따져볼 수 밖에 없다"(정통부 고위관계자)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법"으로 따지고 다스려야 할 영역이다.
비자금 사건때처럼 하면 그걸로 족하다.
그래도 "도덕성"을 따져 묻겠다고 고집한다면 과연 도덕성의 실체가 무엇
이냐는 점부터 짚어보는게 순서다.
공맹지도를 도덕이라고 한다면 가장 도덕적인 기업은 공자나 맹자가 경영
하는 기업이다.
혹여 비자금사건이나 어느 기업의 환경파괴 사례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이는 더욱 난센스다.
실체가 없는 만큼 도덕성을 평가할 기준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도덕성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도덕성의 수준을 비교해야 하는데
무얼 갖고 도덕성을 평가하겠다는 말인가.
비자금액수나 환경파괴정도를 지수로 만들면 모를 일이지만.
이렇듯 도덕시험은 문제를 내기도 힘들고 채점을 하기도 어렵다.
시험성적이 좋은 학생이라고 해서 도덕적인 학생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도덕성을 기준으로 한다고 해서 정말로 도덕적인 기업이
선정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재계가 서로 상대방 흠집내기식의 "비도덕적"인 홍보.로비전에 나서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부의 기준에 투명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문제는 또 있다.
설사 도덕성의 실체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소비자, 나아가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정부가 특정사업권을 허가하는 기준으로 도덕성 운운하는 것은 다분히
희극적일수 밖에 없다.
아니 의도적일 수도 있다.
왜냐.
도덕성 조항에서 또 다른 규제 메커니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문에 자의적인 해석조항이 많은 국가일수록 정부의 규제정도는 높다"
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묻고 싶다.
PCS 사업자 선정기준으로 "도덕성" 항목을 추가한 것은 아직도 기업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정부의 "오만과 편견"의 산물이 아닌지를.
도덕성 기준을 고집하다 행여 특혜시비를 불러일으키는 자충수를 두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에 하는 말이다.
필리핀의 라몬 막사이사이는 대통령 재임시절 그의 아저씨인 암브로시오가
정부의 시멘트 구매입찰에 낙찰되자 이를 취소해 버렸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 계통에 종사했던 암브로시오는 낙찰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대통령을 상대로 2만5,000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
했다.
정부의 행정에 도덕성을 개재시키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과 함께.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