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2일 발표한 "96년 국별 무역장벽 (NTE)
보고서" 내용에 대한 국내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무역장벽에 대해 지적한 강도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낮았으며 새로운
문제제기보다 이미 거론된 문제들을 중심으로 이행정도를 따지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한편에서는 안도하는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올해 대통령선거를 치러야하는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유권자들을
의식해서라도 통상협상에서 강경한 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이례적으로 불공정 무역행위라고 생각되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시시콜콜히 열거함으로써 앞으로 품목별로 미국측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는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면 통상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는 한-미 통상협상과 관련해 다음의 몇가지 점에 대한 정부의
진지한 노력을 당부하고자 한다.

첫째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합리적인 통상협상 전략을 펴달라는
점이다.

그동안 정부는 한-미 통상협상에서 일방적으로 양보만 하는 무기력한
협상자세를 보여왔다는 비난 여론이 높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무역규모도 세계 12위로 성장한 만큼 이에 걸맞는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지난해 100억달러가 넘는 무역수지 적자를 봤는데 이중에서 미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60억달러나 되는 점은 어떤 형식으로든 따져봐야 할
일이다.

얼마전 정부도 공세형 통상전략을 펼 것을 다짐한 만큼 귀추를 지켜볼
것이다.

둘째는 지난해 미국의 주도로 WTO (세계무역기구) 체제가 출범한만큼
쌍무적인 통상협상보다 다자간 무역협상에 치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통관절차건 지적재산권 보호기간이건 한-미간의 협상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WTO 체제의 출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미국이 걸핏하면 무역보복을
위협하며 쌍무협상을 강요하는 것은 강대국의 횡포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WTO 제소도 불사한다는 결의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셋째로 정부의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이 보다 밀접하게 연계돼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의 주요 관심사항인 자동차 통신 금융 등에서 필요성이 높다.

과거와는 달리 국내 시장개방을 피하거나 늦추는 것은 매우 어려운 만큼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의 초점을 국내 산업의 국제 경쟁력강화에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삼성의 자동차산업진출, 제2 이동통신 사업자선정, 정책금융부담의
과중 및 책임경영체제 혼란 등을 보면 과연 일관된 정부방침이 있는지 의심
하지 않을수 없다.

게다가 업계에서는 기술개발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내실을 다지기 보다는
자동차 생산능력의 배증, 이동통신 사업에 대한 과열경쟁, 구태의연한
금리담합과 맹목적인 외형 경쟁 등으로 공연히 외국기업의 관심과 경계심만
자극하고 있다.

WTO 체제에서는 한-미 통상마찰이 아니라도 어차피 국내 시장질서가
국제수준에 맞게 재편될수 밖에 없다.

이 점을 명심하고 통산당국은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전향적인
자세를 갖되 부당한 통상압력은 단호하게 배격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