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어휘와 서정적인 문체로 삶의 근원을 탐구, 90년대 젊은작가군의
선두대열에 선 김소진씨(33)와 윤대녕씨(34)가 새 작품집을 펴냈다.

김씨의 3번째 소설집 "자전거도둑" (강 간)과 윤씨의 2번째 장편
"추억의 아주 먼곳" (문학동네 간)은 상업소설이 판치는 시대에
순수문학을 고집하는 이들의 각기 다른 "세상읽기" 방식을 잘 보여준다.

김씨가 현실의 실체를 탐색하는 쪽이라면 윤씨는 존재의 본질찾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전거도둑"은 김씨가 지난해 전업작가로 나선 이후 처음 펴낸
신작소설집.

단편 8편과 중편 1편이 실렸다.

그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고아떤 뺑덕어멈" 등 소설집과 장편
"장석조네 사람들"에서 보여준 "아버지 세대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표제작은 신도시에 사는 주인공이 자신의 자전거를 몰래 타는 에어로빅
강사 미혜를 만나 "자전거도둑"이라는 이탈리아 영화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가는 내용.

구멍가게 주인이던 아버지는 도매상인 혹부리영감 앞에서 셈이 잘못된
소주 2병을 되찾으려다 뒤집어쓴 도둑누명을 벗기 위해 어린아들을 때리고
속으로 운다.

현재의 "나"와 영화속의 아들, 옛날의 "나"가 한 축을 이루고 미혜와
그녀의 죽은오빠, 영화속의 간질병청년이 또다른 얘기로 가지를 뻗는다.

작가는 "어릴적 내가 갖고 싶었던 은빛자전거도, 버릇없는 도둑으로
몰렸던 누명도 그리고 솔방울 벙거지 위로 계집애의 콧김처럼 미끄러지던
눈송이도 이제는 다 닳아버린 기억일 뿐"이라고 독백한다.

하지만 그의 소설에서 "과거"는 세월의 층계를 오르내리는 구름다리이며,
현실과 기억의 색종이를 겹쳐놓은 무늬로 다가온다.

지난 세대의 화첩위에 새로운 삶의 풍경을 색칠하는 작업이 공감을
얻는 것도 이때문이다.

윤대녕씨의 "추억의 아주 먼곳"은 과거를 통한 존재의 근원찾기를
다룬 장편.

어느날 문앞에 다가와 서성이는 낯익은 여자의 발자국소리에 "나"는
2년전 헤어진 은화를 떠올린다.

이틀후 그녀의 실종소식과 행방을 묻는 언니 문희가 찾아오면서
그는 혼란에 빠진다.

은화의 삶을 더듬는 과정에서 그와 문희 사이에 싹트는 엷은 사랑과
성장기의 아픔이 실루엣처럼 깔리고,마침내 그는 "추억 저편의 묵은
풍경"에서 울려오는 "귀에 익은 사무친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거울 뒤쪽의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부박함을
역설적으로 내비친다.

작가는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문체로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해 끊임없이 방황한다.

"어디선가 무적이 울고 먼바다에서 섬들이 몸을 뒤채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는 안개속의 폐허된 항구"에서 그는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새롭게
부활하려는 꿈과 진정한 "나"의 회복을 시도한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