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분식결산을 묵인하는 등 공인회계사의 부실감사로 인해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회계사가 소속된 회계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시효의 완성여부를 놓고 법원이 엇갈린 판결을 내려
투자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은 감사인이 부실감사, 허위감사
보고서 작성으로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혔을 경우 투자자들은 "당해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또는 감사보고서 제출일로 부터 3년이내에 손배청구를
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지법 민사 33단독 이해완판사는 지난달 13일 한국강관에 투자해
1천7백여만원의 손해를 보고 지난해 5월 소송을 낸 정경여씨(서울 관악구
봉천11동)가 청운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소를 제기
할 수 있는 시효 1년이 이미 지났다"며 정씨의 청구를 기각,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틀뒤 서울지법 민사 30단독 정무원판사는 같은 이유로 2천3백여
만원의 손해를 보고 지난해 5월 소를 제기한 오성하씨(서울 은평구 응암
1동)가 청운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낸 손배소송에서 "시효가 지나지
않았으므로 피고법인은 오씨에게 1천1백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이판사는 문제가 된 소멸시효 기산점인 "당해사실을 안 날"을 한국강관의
분식결산과 피고법인의 부실감사 사실이 증권감독원에 의해 투자자들에게
공시되고 언론에 공개된 지난 93년 11월6일로 보았다.

그러므로 회계법인의 부실감사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던 당시에 소를
제기하지 않고 지난해 소를 제기한 정씨는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이판사 판단의 요지다.

그러나 정판사는 지난 93년11월의 공시내용과 언론 보도는 주로 한국강관의
분식결산을 알리는 데만 중점을 둔 것이어서 당시에는 회계법인의 불법
행위를 알 수 있는 정황이 아니었다고 견해를 달리했다.

정판사는 "당해사실을 안 날"이라는 것은 단지 어떠한 손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막연히 안 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불법행위에 의해
손해가 발생한 사실을 안 날을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즉 오씨가 신문보도를 통해 감사인인 회계법인에 대해서도 손배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신문보도가 나간 지난해 5월경이 "당해사실을 안 날"
이라는것이다.

< 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