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식시장이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눈앞에 닥친 총선을 의식해서라도 증시부양을 서두르고 있지만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어 주가, 거래량, 예탁금이 모두 바닥을 기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7일 종합주가지수는 전날보다 8.84 포인트가 떨어져 지난 93년 12월
이후 27개월만에 가장 낮은 842.22를 기록했다.

이날도 주식거래량은 1,775만주에 그쳐 계속 2,000만주선을 밑돌았으며
고객예탁금마저 2조원 아래로 떨어져 맥빠진 모습이었다.

8일엔 약간 회복됐지만 기본적으로 달라진건 없다.

흔히들 이같은 증시침체의 원인을 주식수급의 불균형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초부터 기업공개가 억제되고 있고 유상증자도 부진해진데다
한국통신 주식의 매각도 계속 연기되고 있어 주식공급물량이 많다고는 할수
없다.

공급물량이 많기는 커녕 발행시장이 위축돼 주식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크게 줄어든 실정이다.

따라서 최근의 증시 침체는 수요기반의 위축 탓으로 봐야할 것이다.

주식 수요감소는 특히 정국불안및 불공정거래 빈발로 인해 투자심리가
냉각된 탓이 크다.

지난해 중반 이후 시중 유동성은 넉넉한 편이며 실세금리도 12%를 밑도는
안정세를 유지해왔다.

최근 경기둔화추세가 매수위축의 큰원인으로 꼽히지만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9.3%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을 때에도 매수세는 시원치 않았다.

결국 지난해 10월에 터진 비자금파문이 5-6공 청산으로 이어졌고 이로인한
정국불안이 총선결과에 따라서는 더욱 심해질수도 있다는 판단이 투자심리를
압박하고 있다.

게다가 잊을 만하면 불거져 나오는 주가조작 사건으로 일반 투자자들의
증시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또 한가지 침체 원인은 은행 투신 증권등 기관투자가들의 주식매수 여력이
매우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투신은 팔리지 않은 수익증권 때문에, 증권은 투신진출을 위해 틈만 나면
보유주식을 팔아야 할 처지이며 너나 할것 없이 거액의 평가손을 입고 있어
기진맥진한 상태다.

사정이 이러니 지난달 말에 재정경제원이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확대를
발표하자 대기성매물이 쏟아져 나와 종합주가지수는 오히려 10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지난 4일에도 자사주및 신단기공사채의 취급한도확대, 국민투신에 대한
지리의 자금지원등 투신사영업력 확충방안이 발표됐지만 시장반응은 냉담
했다.

마지막 수단으로 증안기금의 주식매수가 얘기되고 있으나 개입시기는
신중히 고려돼야 한다고 본다.

모두들 총선이후의 정국 추이를 의식해 관망세를 보이는 판에 섣불리
개입해 악성매물만 떠안으면 그 뒤에는 대응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일반 투자자의 보호장치를 정비하고 기관투자가에 대한 자율폭을
확대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현대의 국민투신 인수파문처럼 정부가 기관투자가들을 앞으로도
계속 쥐고 흔들겠다는 자세를 버리지 않는한 주가의 자율반등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