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산업과 생활설계사제도는 동일한 역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보험선진국인 미국 영국 등지에서 설계사가 등장한 것은
생명보험사가 출범하고 100여년이 지난 다음이다.

미국의 경우 최초의 생명보험사는 1794년 설립된 노스아메리카보험사.

그러나 일반인의 인식부족과 보험사의 보수적인 영업자세때문에 계약자
총수는 100명이 채 못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1843년 뉴욕생명이 등장, 투자대리인에게 생명보험외무원의
임무를 부여한다.

보험가입을 권하기 위해 고객을 찾아 나서는 전업설계사가 드디어
등장하고 생명보험상품이 "권유상품"적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이는 미국 보험산업의 급성장을 가져온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영국에선 근대적 생보사인 에퀴터블사에 대응, 1792년 설립된
웨스트민스터소사이어티는 외야조직을 통해 생명보험상품을 판 최초의
회사로 기록돼 있다.

이 회사는 기존사와의 경쟁을 위해 지방고객 유치에 적극 나서기로
하고 지방소재 은행가 변호사 등을 생명보험 영업에 활용했다고 한다.

그 지역사회에서 보험가입 신청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는 점때문이었다.

어찌보면 영업보다 언더라이터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회사에서 지급한 수수료도 지금의 신계약수당이 아닌 계약사
정비용이라고 해야 더 맞다.

오늘날 생명보험영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채널인 설계사의 역할이 고객
만족 품질보증이란 새로운 추세에 맞춰 점차 계약사정이나 투자상담역으로
바뀌고 있다.

유행도 주기적으로 복고풍을 타듯 보험사의 꽃 설계사들도 과거 초창기
역할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쪽으로 옮겨가는 것 같아 관심을 모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