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행 문턱은 높기만 했다.

수많은 서류작성과 까다로운 절차도 부담스럽지만 고객의 입장에서 가장
분통이 터지는 일은 은행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을 끄는 것이다.

어차피 돈을 쓸 사람은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고 이곳저곳 눈치봐야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금융환경이 크게 변하면서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시간이 돈"이라는 격언은 금융업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서비스하느냐"가 고객만족의 척도가 된 것이다.

이같은 사정은 개별 은행들 뿐만 아니라 국내 은행권 전체를 놓고 볼때도
마찬가지다.

금융자율화와 금융시장 개방에 대비해 국내 은행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감원을 위해 명예 퇴직제도를 활용하고 연공서열을 무시한 발탁인사를
하는가 하면, 팀제를 도입해 조직 활성화를 꾀한다고 야단이다.

그러나 경쟁력강화란 상대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가 한걸음 내디딜때 경쟁국들이 두세걸음 앞서 간다면 우리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우리보다 규모나 수익성이 훨씬 좋은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경영혁신
노력에서도 앞서가고 있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은행의 경쟁력은 여러가지로 측정될수 있지만 결국은 수익성으로 집약된다.

우리 은행들이 선진국 은행에 비해 영세하다고 하지만 수익성만 좋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 않은가.

이점에선 우리보다 앞서 있는 일본 은행들도 미국 은행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는 실정이다.

국내 은행이 수익성개선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많지만 핵심은 자산운용을
건실하게 하고 부실채권을 가능한한 빨리 상각하는 것이다.

은행의 자산운용은 대출을 기본으로 하므로 엄격한 신용조사와 대출심사를
거쳐 부실채권을 예방해야 한다.

특히 외부 압력을 철저히 배제하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는 일이 중요
하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공평무사하고 자율적인
인사정착이 은행 경영개선의 관건인 셈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도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사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며 은행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자율경영 보장및 결과에 대한 인사고과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하느냐가 당면 과제인 셈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금융 전업가의 자격완화 움직임이 "주인있는 은행"과
어떻게 연결될지 주목된다고 하겠다.

일반 은행들이 오늘부터 열리는 올해 주주총회를 맞아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영성과에 대한 시비와 함께 일부 은행에서는 문책성 인사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은행감독원이 지난 20일 발표한 "95년의 일반은행 경영평가결과"를 보면
신한, 하나, 대구은행 등의 경영성과가 우수한 것으로 꼽혀 우열이 점차
굳어지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과거의 묵은 부실을 털어내고 심기일전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역전이 가능한 만큼 엄정한 인사를 통해 경영혁신을 가속화할 것을 은행
주총에 기대해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