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의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블라디미르 막시모프, 첼로의
거장 모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독일의 작가 토마스 만, 레마르크
등, 이 유명 예술인들의 공통된 부분은 모두 그들의 국내보다 망명지에서
한층 예술의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다.

망명이란 정치적 탄압이나 종교적 민족적 압박을 피하기 위해 외국에
비호를 요청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유가 무엇이건간에 사람이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힘든 일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조국을 등진 까닭은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세계인권선언(1948년)은 "사람은 누구나 박해로부터의 보호를 타국에
청구하고 또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14조)고 명시하고 있고 67년
국제연합 총회는 "비호권에 관한 선언"으로 이를 재확인했다.

또 67년 국제연합 총회는 "망명자의 지위에 관한 조약"을 보완해
"망명자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를 채택했다.

한편 망명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기구로선 제1차 세계대전후
극지탐험으로 유명한 난센이 고등판무관에 임명된 적이 있었고 제2차
대전후엔 나치나 파시스트 체제에서 망명해 온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난민기구(IRO)가 설치됐었다.

이 사업을 계승해 51년에 설치된 국제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HCR)는
두 차례나 난민구호에 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망명자에 대한 보호는 국제선언이나 문명국가의 법률 또는
지역적 조약등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실제 국제법상으론 국가가 이에
대응해야 할 의무는 없는게 현실이다.

나라에 따라선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는 경우가 있고 이때
"정치범 불인도의 원칙"이란 국제 관행이 적용돼야 하지만 강제력이
있는 건 아니다.

최근 북한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씨일행의 망명사건에 이어 사회안전부
조명길하사관의 망명기도와 죽음으로 큰 충격이 일었다.

조하사관의 죽음이 자살이냐 사살이냐를 떠나 정치적 망명을 희망했던
한 젊은이가 그처럼 비극적인 결말을 맺을수 있느냐는 인도적인 동정
때문이다.

조하사관의 죽음은 국제법상의 이상이 현실의 국가권력 앞에 얼마나
무력한가를 보여준다.

북한은 이 사건으로 북한이 얼마나 인권이나 법을 무시하는 독재국가
인가를 재확인시켜 주었을뿐 아니라 김정일체제의 구심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