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현 < 서울시립대총장 >

K형.

환경 공해 쓰레기 물 공기 땅의 세계화가 인류문제군의 또 다른 핵심과제
입니다만 시간이 맞지 않아 그쪽 토론에는 미처 발을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쪽 얘기는 죽이겠습니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통신교통혁명-세계경제체제의 단일화-세계생산중심의
남방화-물류, 환경문제의 아시아화로 이어집니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세계화는 피할수 없는 과제이긴 하나 인류가 공통으로
이 세계화 과정을 관리하지 못하면 큰 고통과 파멸의 반동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바로 다보스회의의 창립자요 회장인 K.슈와브 교수는 세계화을 위한 구조
개혁이나 의식개혁을 수행할 능력의 부족과 종합적 일관성의 문제를 걱정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구체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요점은 첫째 세계화에 따르는 경제력의
재분배는 필연적으로 정치력의 재분배를 수반하는데 결과적으로 유럽과
미국에 덜 유리하고 동아시아가 혜택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힘의 균형의 변화과정을 잘 다루지 못하면 불안정의 요인이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술의 혁신이 과거와는 달리 고용의 증대가 아니라 감소효과를 더
촉진하는 경향이 있고 지식.정보지향 세계화의 파도를 타는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간의 격차는 더욱 넓어진다는 점입니다.

셋째는 과거와는 달리 기업의 이익과 종업원의 이익, 국가의 이익이 점점
더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극단주의 보호주의 지역주의 종족주의가 악화될 가능성을 보는
것입니다.

이번 26차 WEF회의 총주제가 "지속적 세계화"였던 까닭도 어떻게 하면
세계적 차원의 자유개방 체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만들수
있느냐는 문제의식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세계화, 세계적 시장화가 기업경영자나 투자자들만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다수의 이익이 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지요.

슈와브회장은 세계화가 "시장의 폭주"와 같은 의미여서는 안되고 기업과
국가의 사회적 책임을 재정의하고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회의에는 문화 공동체 사회철학 종교 부패 지도자등의
주제가 망라되었습니다.

아주 진지하게 그리고 실체적으로 새로운 사회체제의 창조에 매달려야
하겠습니다.

K형.

여기까지 이르면 금방이런 반문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화를 하지 말고 첫째 옛날의 폐쇄적 전통방식으로 가거나
둘째 근대제국주의 방식으로 가면 될 것이 아니냐하는 공격이지요.

첫째는 우리의 자원 환경 생명 공간 욕망 조건이 과거의 전통생활 방식
때와는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불가능하고 둘째는 우리의 축적된 힘이
약하기 때문에 실천 불가능한 일입니다.

설사 오늘 가능해도 내일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전통과 근대주의를 동시에 극복하고 재창조하고 새로운 인류의
보편적 정의, 보편적 평화를 창조하는 그런 가치 이념 비전 정책을 마련
하여야 합니다.

세계화의 비전과 가치가 이에 가장 가까운 것이지요.

슈와브교수는 다수 국민이 스스로가 성공적인 경제운영의 주력참여자
(stakeholder)가 되어야 함을 지적했습니다.

주주(shareholder)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기업이 아니라 종업원 소비자
원료공급자 주민 국가등 모두(Stakeholders)의 이익에 봉사해야 한다는
이론과 주장이 미국과 유럽에서는 새롭게 제기되고 있지만 영국의 경제
평론가 S.브리튼의 비판대로 전부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것은 그 누구의
이익도 계산이 불가능한 결과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K형.

확실히 세계화가 거스를 수 없는 인류문명의 흐름이고 시대정신이듯이,
기존의 사회관계, 즉 시민(종업원)-기업(주주, 경영인)-국가.정부(정치인,
관료)-국제.세계(인류)의 종속적 틀이 바뀌지 않고는 세계화가 어려울
것이고 동시에 인류의 생명 생존이 파괴될 것입니다.

파리에서 쥐페 수상의 장기전략과 가치를 담당하는 특별고문인 기소르망
교수와 수상관저 식당에서 특징있는 해군식 점심을 나누었습니다.

스스로 제2의 레이몽 아롱을 자부하는 그와 세상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프랑스가 추구해야 할 가치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연대"
(Solidarity)라고 했습니다.

싱가포르의 이광요식으로 위에서 만드는 연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고용에 간섭을 하지 않으나 청소년 실업이
사회안정을 해치니 기업이 사회적 기반안정을 위해 청소년을 고용하라고
정부가 호소하는 그런 연대였습니다.

비영리 민간기관의 증가에도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역시 행동강령, 실천계획이 확실한 그림은 아니었습니다.

교회얘기도 나왔습니다.

슈와브회장의 국민 대다수의 주역참여자 기능, 소르망 박사의 연대강화,
근대주의의 극복, 국수주의와 복고주의의 극복, 세계화의 큰 목표와 비전은
보이나 이 길을 달리는 행동지도가 아직 덜 구체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는 규칙을 만드는 경영인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규칙을 깨는"
(Rule Breaker)경영인 지도자가 필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기업 최고책임자는
혁명가래야 한다고 말한 것은 미국의 에너지그룹인 엔론의 회장 K.레이
였습니다.

슈와브회장은 흔히 인내를 미덕이라고 하지만, 여기 다보스회의에서는
"창조적 조급성"이 미덕이라고 역설적 주장을 했습니다.

두려움 대신에 희망을, 실망 대신에 열정을 담고 주저 대신에 비전이 있는
세계적 지구적 인류적 행동계획을 창조하기 위한 창조적 조급성입니다.

K형.

한국의 세계화를 위한 사회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하여는 "삶의 질"의
리엔지니어링이 필요하고 정치의 리엔지니어링이 필요합니다.

꼭 30년전인 66년 늦봄 융프라우를 처음 구경했었습니다.

내 아들 또래 애들의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답고 행복한 스키타기에 왈칵
눈물을 쏟은 기억이나고 커서 읽으라고 편지을 썼었지요.

아마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돈있는 집 애들은 강원도 용평은 물론 융프라우
에까지 스카타러 오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행복은 탈전근대의 행복, 근대의 행복입니다.

그나마 우리중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지금 우리는 탈근대, 초근대로 인류전체, 지구촌 전체의 행복을 만들어야
하는 근대화작업보다 더 큰 작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화에서 18세기 실학파들이 이 나라 역사의 주류였었더라면,
또 19세기말 개화파가 당시 역사의 주력참여자였더라면,그리고 20세기 중반
1945년에는 냉전을 꾀뚫어 보는 민족주의가 주류였더라면 하는 후회를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라면 망국의 비극, 식민지의 모멸, 분단과 전쟁의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1세기의 우리 후손들로부터 20세기말의 우리들이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후회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이 나라 지도자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 사회공동체, 민족, 동해와 황해에 연해 사는 15억의 생명, 인류와
지구의 평화로운 삶을 창조하는 세계화의 비전에 따라 행동지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다보스를 앞지르는 서울의 세계화지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꿈같은 소리라고 하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에 의해서 또는 황해와 동해의 보복에 의해서
비극이 옵니다.

세계화를 위한 사회적 리엔지니어링, 정치적 리엔지니어링, 생각과 가치의
리엔지니어링 작업도를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합니다.

K형.

다보스에 올 필요가 없이 우리가 다보스를 만드는 날 우리문제와 북한
문제도 같이 극복이 될 것입니다.

기회있으면 다보스에서 본 세계를 더 전하겠습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