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말 동양증권배 16강전이 열린 호텔 롯데 검토실에서는 김수장
구단, 백성호 구단, 정수현 팔단 등 호화검토진이 유창혁 칠단-가타오카
사토시 구단의 대국을 검토하고 있었다.

"전부 모여서 검토하니까 유창혁의 수가 이해되네"

김수장 구단은 유칠단이 상변을 공격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하변대마를
몰자 "도남의재북"이라는 고사성어까지 동원하며 감탄했다.

백성호 구단도 "가타오카가 지금 던지면 매너좋다는 소릴 듣지"라며
맞장구쳤다.

그만큼 필승지세였지만 유칠단은 그 바둑을 역전패했다.

오히려 전세가 불리해 검토실의 외면을 받던 이창호 칠단과 조훈현
구단은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이 장면은 유창혁 칠단에 대한 평가의 단면을 보여준다.

유창혁 칠단은 국내기사중 가장 평가가 엇갈리는 기사다.

세계최고의 기량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일부 기사들은 유칠단이
"나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평가절하한다.

유칠단의 기복이 심한것이 상반된 평가의 배경이다.

당대의 일류 조훈현 구단을 상대로 타이틀을 방어하는가 하면 한수
아래의 기사에게 맥없이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 유칠단의 현주소다.

13일 끝난 진로배 2차전에서도 유칠단은 회의적인 평가를 벗지 못했다.

비록 2승을 거뒀지만 내용은 미흡했다.

유칠단은 3연승에 도전하다 결국 중국의 차오 다완 구단에게 불계패했다.

패인은 유칠단이 일류답지 않은 아마추어 감각의 수를 둔것.

이를 보고 대국장을 찾은 한 바둑인은 "유창혁은 바둑이 유리해도
안심이 안되고 미덥지 못하다"고 말했다.

유창혁 칠단은 국민학교때부터 탁월한 기재를 보였지만 중학생시절과
군시절의 공백기를 가졌다.

이것이 유칠단의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며 아쉬워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공백기 없이 계속 정진했다면 이창호를 능가하는 기사가 됐을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유창혁 칠단 자신도 "군시절은 나름대로 여유를 갖고 바둑공부를
했지만 중학시절의 공백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프로기사들은 "유창혁의 얼굴을 보면 대번에 유.불리를 판별할수
있다"고 전한다.

일희일비하는 여린 성격이라 승부사로서 부적합하다는 말이다.

좀처럼 표정이 없는 이창호 칠단과 대비되는 성격이다.

반대 의견도 있다.

"유창혁이야말로 승부사다.

나는 마음이 약해 유창혁처럼 대범한 구상을 시도하지 못한다.

그런 승부사기질이 국제무대에서 통하는 이유다"고 말하는 기사도
있다.

어떤 평가가 옳은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유칠단이 낙관주의를 청산하고
침착함을 더 길러야 한다는 데는 바둑인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4일자).